코멘트
제일 좋아하는 댄서, 세르게이 폴루닌(Sergei Polunin)! "난 발레를 선택한 적이 없어요. 발레는 그저 나 자신이죠." 세르게이 폴루닌은 2009년 영국 로열발레단 최연소 수석무용수로 발탁됐으나 배우의 길을 가겠다며 발레단을 박차고 나왔으며, 한때 러시아 발레계의 '배드보이'라 불렸다. 2014년 노보시비리스크 발레단 백조의 호수 내한 공연 당시 지그프리트 역으로 돌아왔었는데, '중력이 뭐임? 먹는 거임?'하며 허공을 가르고 날아다녀 공연을 보던 나를 큰 충격에 빠뜨렸다. 2011년 개봉한 영화 '오페라의 유령 25주년 특별공연 실황'을 보면 한니발의 노예 감독 역할을 맡은 세르게이 폴루닌을 볼 수 있다. 거기서도 잘 날아다님. 정말 놀라웠던 건 그 때는 그게 세르게이 폴루닌인줄은 모르고, 동작과 춤만 기억했는데, 백조의 호수를 보고 하도 낯이 익어서 찾아보니 '갸가 갸인' 상황이었던 것. 몸짓만으로 자신을 각인시킬 수 있다니! 그리고 그 세르게이 폴루닌의 영화가 나오다니! - 1개월 전 기대평을 쓰고 오늘 시사회로 관람했다. 영화는 흔하게 접할 수 없었던 세르게이 폴루닌의 어린시절부터의 영상과 아픈 가족사까지 근접 접근한다. 그 유명한, 호지어의 "Take me to church"와 함께 하와이의 눈부신 햇살과 녹음 속에서 촬영한 마지막(을 의도한) 댄스 영상은 분명 소름끼치도록 아름답지만 세르게이 폴루닌의 아름다움을 다 설명하기에는 부족해보인다. 1989년생인 이 댄서는 아직 한국 나이로 고작 29세이다. 29년의 시간 동안 이렇게 완벽한 영화 콘텐츠를 뽑아낼 수 있는 삶이라니, 어떻게 보면 천재의 삶은, 본인에게는 괴로운 순간 투성이일지 몰라도 많은 타인에게는 그래서 부러움의 대상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풍운아, 배드보이, 제임스 딘, 짐승과 같은 수식어들 때문에 잊기 쉬운 그의 어린시절은 남다른 노력으로 점철된 시간들이었을 것이다. 그는 의외로 타고난 재능만으로 설겅설겅 춤을 추는 댄서가 아니었다. 사실 발레계에서는 남다른 노력없이 톱의 자리에 오르는 천재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에서 세르게이의 동료가 말하듯 발레 댄서로 살았다는 것은 '다른 모든 것은 포기했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게 29년 밖에 살지 않았지만 발레 하나로 꽉 차 빈틈없는 세르게이의 일생에서 확인할 수 있듯, 그가 현재 완벽한 자세로 쉽게 하늘로 휙 뛰어올라 날 수 있는 건 '서태웅이 00번도 넘게 쏘아온 슛'처럼 완벽하게 체득된 하루하루의 습관, 하루하루 연습의 결과일 것이다. 세르게이 폴루닌이 은퇴하지 않아서, 동시대를 사는 현직 댄서여서 얼마나 영광이고 고마운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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