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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한 낙관주의, 어느 순간 극한의 상황과 그 끝에 놓이게 된 인간은 단순히 기쁘다, 슬프다로는 정의 할 수 없는, 그 어떤 '상태' 놓이게 되는 경험을 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슬픈 것의 반대는 기쁜 것인가, 아니 기쁜 것의 반대는 슬픈 것인가. 사실 그 두 감정은 동일한 연장선상 안에 놓여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정의 할 수 없는 감정과 환상 그 모호한 경계에 놓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인간 군상. 술에 빠져 하우적대다 끝내 술의 중독이 아닌 살아있는 것 자체의 비참함 그 스스로의 비참함에 중독되어 헤어나오지 못하는 인간, 그러니까 나의 아버지를 나는 지금껏 목도해왔다. 참으로 신기한 것은 그런 참담하고도 몸이 으스러질 것 같은 괴로움에 시달리는 사람은, 쉽게 죽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곁에 인간들은 참으로 알 수 없게도 그들을, 연민과 공감의 시선으로 넓게 안아주려한다. 아무리 비참한 인생이어도 살아있는 것이 더 낫다라며 속으로 그 상대를 몇번이고 죽여왔을 나 자신을 속이면서도 진심어린 그 마음을, 남아있는 자들은 그 잔혹한 낙관주의 안에서 얼마나 더 괴로워하며 살아야 하는 걸까. 그 옛날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했듯 '그 누구든 같은 물에는 두 번 다시 발을 담글 수 없다' 다시 물에 발을 담근 이는 같은 사람이 아닐 것이며 또한 이미 물은 흘러가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시는 발을 담글 수 없는 남겨진 인간이 보게 되는 환상과 고통은 누구의 책임이란 말인가. 엔딩의 바다를 보여주는 넓은 샷에서 4사람이 연장선상에 선 모습이 마치 태양계의 행성들과 같이 느껴졌던 이유는 뭘까. 내가 잘 모르는 절대 알 수 없는 그들의 삶이 아름답게 보였던 이유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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