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수경

새벽의 모든
평균 3.7
이 영화의 무의식을 좋아한다. 말이 되는 얘기라면. 다음과 같은 장면들 때문이다. 회사를 취재하러 온 중학생 PD 두 명이 완벽주의자들이다. 인터뷰 장면을 다시 찍는다거나 편집 중에 지겹게 본 장면을 또 보는 애들. 그렇게 만들어진 다큐멘터리를 영화가 3초 정도 비추고 그 다큐멘터리를 보는 직원들의 얼굴을 내리 보여준다. 영화가 플라네타리움을 보러 온 사람들을 담을 때도 마찬가지다. 둥근 돔의 천장에 뜬 별들을 보는 사람들의 얼굴을 길게 담고, 정작 그들이 경탄한 밤하늘은 스치듯 지나간다. 별들의 존재가 기적일 수 있는 이유는 그걸 보는 사람들의 눈빛 때문이며, 그 얼굴들이 아니라면 별들은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할 것이라는 듯. 야마조에의 공황장애를 아직 관객이 모르는 초반부에 그는 불이 꺼진 거실에서 약을 먹는다. 바깥에 지나가는 차들이 빛줄기를 간간이 집 안으로 띄운다. 거실 불을 켤 힘이 없을 때 바깥에서 빛을 누군가 비춰줄 것이라는, 환하고 따뜻한 무언가가 곧 야마조에의 생활에 침범할 것이라는 복선 같다. 또한 그에겐 안전한 집이지만, 그가 상처를 준 이에겐 그렇지 못하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정말로 모두를 품으려 한다. 런던으로 전근 간다는 여자에게 야마조에가 서운한 티를 조금도 내지 않자 여자는 집 밖에서 얘기를 나누자고 한다. 둘 사이에 오간 대화를 영화가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여자가 야마조에의 집을 마치 바이러스 소굴처럼 여기고 발을 들이려 하지 않았다는 사소한 세부가 나는 무척 마음에 든다. 야마조에가 영화의 주인공이지만, 우주의 중심은 아니라는 걸 분명히 짚고 가는 것 같아서. 이 영화가 엑스트라들을 다루는 방식에 나는 혼을 빼앗겼기 때문에 개봉했을 당시 극장에서 두 번 보고, 다섯 계절 만에 노트북으로 또 봤다. 후지사와가 찹쌀떡을 돌린 장면에서 직원들의 잡담이 들려온다. 아이 갖다줘. 저희 애 세 살인데 찹쌀떡을 먹을 수 있을까요? 먹지 왜 못 먹어. 직원들의 회식 장면은 안 나오지만, 회식을 계획하는 장면은 나온다. 아이 픽업 때문에 늦참할 예정인 직원은 동료에게 구석 자리를 좀 맡아달라고 부탁한다. 그러겠다고 답하는 이의 태도엔 정말로 그럴 것 같은 기세가 있다. 후지사와가 이직 에이전트와 카페에서 면접을 볼 때 에이전트는 아이의 전화를 잠시 받으러 나간다. 재가열 버튼을 눌러야 한다니까, 하면서. 언젠가 내 삶에도 있었던 통화 같은 기시감이 느껴진다. 세상 모든 엄마들은 저런 전화를 받아야 하는구나. 그 잠깐의 대사 하나로 에이전트의 커리어 밖 삶을 엿볼 수 있는 큰 창문이 하나 열렸다. 야마조에가 이직을 안 하기로 결심하며 전 직장 동료와 카페에서 만날 때도 그 동료가 데려온 초등학생 남자아이가 있다. 그 아이는 나중에 야마조에가 건네는 플라네타리움 전단지를 받고 체육관까지 찾아온다.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후지사와의 목소리는 야마조에가 쓴 대본을 읽는다. 대본은 20년 전에 죽은 상사의 동생이 30년 전에 방송한 라디오를 듣고 쓴 것이다. 그 동생의 형은 애도 모임에 10년째 나가고 있다. 애도 모임엔 온갖 애도가 다 있는데, 다들 즐겁게 탁구를 친다. 영화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모두의 새벽을 연결한다. 말 그대로 새벽의 모든 존재를 잇는다. 해 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 오랜 말, 새벽엔 희망을 찾는 게 인간들이 오래전부터 하던 일이라는 말을 할 거라면 이 정도로는 세계관이 받쳐줘야 한다. 안간힘이란 무엇일까. 분명 모두가 최선을 다해서 사는 것 같은데. 각자 열심히 살았다고 증명하려고 안달이 나 있는 것 같다. 우리 서로 “네가 열심히 산 거 알고,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보다 덜 열심히 살지 않은 걸 내가 분명히 아니까, 쓸데없는 과시 안 해도 된다,” 라고 하루에 한 명한테만 말해줘도 군비 경쟁 같은 이 과시의 문화를 다 함께 허물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 너무 장엄하게 장문의 카톡 같은 걸로 말고, 무심코 당연하다는 듯 말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가 인간들의 안간힘을 보여주는 온도가 나는 마냥 좋다. 야마조에가 지하철에 탈 수 있으려나 궁금해하며 지켜보는데, 그는 정말 탈 수 있을 것처럼 지하철에서 내리는 승객에게 가볍게 목례까지 한다. 온 세상이 자기를 지켜보는 걸 아는 절박한 몸짓처럼 보인다. 그런 목례를 하고서도 지하철을 떠나보내고 무너지기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 안간힘의 생김새란, 너무도 평범해서 그의 인사를 받은 승객은 추호도 몰랐을 것이다. 왜 이렇게 길어진 건지. 마지막으로 제일 좋아하는 장면. 후지사와의 집에 폰을 갖다줄 일이 생겨서 야마조에가 후지사와의 동네를 자전거로 돌아다니는 장면이다. 낯선 동네의 친숙한 풍경들. 오르막길에 야마조에는 자전거에서 내려 힘겹게 끌고 올라간다. 그를 누가 추월하냐면, 자전거 뒤에 아이까지 태우고 가뿐히 올라가는 어느 여성이다. 그 여성은 그 오르막길을 수백 번 오른 적 있는 모양새다. 야마조에도 여러 번 오가면 언젠가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미션을 수행한 후에 햇살을 즐기는 야마조에. 다음 장면은 그가 회사에 간식을 돌리는 장면이다. 그건 후지사와가 종종 하던 행동이다. 후지사와가 사는 동네를 한 바퀴 돌면서 얼마간 후지사와가 되기라도 한 듯, 후지사와의 습관이 몸에 배었다는 듯. 동료가 사는 동네를 한 바퀴씩만 돌아도 우리는 잠시 그가 될 수 있다고 영화가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영화를 어떻게 안 사랑할 수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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