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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삼이

오삼이

7 years ago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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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터 아웃사이더

책 ・ 2018

평균 4.2

2019년 08월 19일에 봄

우리는 쟁점이 하나뿐인 삶을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쟁점이 하나뿐인 투쟁도 결코 있을 수 없다. (p.244, 1960년대로부터 배울 점) . 해방이라는 목표를 공유한, 또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만한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우리들 사이에, 억압의 위계란 있을 수 없다는 점도 알게 됐다. 나는 성차별주의와 이성애 중심주의가 인종차별주의와 동일한 뿌리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pp.233-234, 억압에 위계란 없다) . 나는 내가 억압의 한 형태에만 맞서 싸우는 사치를 부릴 여유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 또 나는 이런 차별 세력들과의 전투에서 어느 전장에 나가 싸워야 할지 선택할 여유도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어디서나 나타나 날 파괴하려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날 파괴하러 나타났다는 것은 곧 그들이 당신을 파괴하러 나타날 날도 멀지 않았다는 뜻이다. (p. 235, 억압에 위계란 없다) . 이는 우리끼리 나눠 가져야 하는 자유의 양이 한정되어 있고, 자유의 가장 크고 달콤한 부분은 더 강한 자와 승리한 자에게 돌아가야 할 전리품이라고 생각하는 그릇된 통념에 입각해 있다. (p.66, 표면에 흠집내기) . 주인의 도구로는 결코 주인의 집을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주인의 도구로 그가 만들어 놓은 게임 안에서 일시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결코 진정한 변화를 일으킬 수는 없습니다. (p.178, 주인의 도구로는 결코 주인의 집을 무너뜨릴 수 없다) . 그들은 자매애라는 말로 아우를 수 있는 동질적 경험이 있다고 믿는 척하는데, 사실 이런 동질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계급 차이가 의식되지 못할 때, 여성들은 서로의 에너지와 창조적 통찰력을 빼앗길 수도 있다. (pp.196-197, 나이, 인종, 계급, 성) . 혁명적 변화의 진정한 초점은 우리가 벗어나고자 하는 억압적 상황이 아니라, 우리 각자의 내면 깊숙이 이식된 억압자의 조각에 맞춰져야한다. (...) 동일한 목적을 공유하더라도 우리와 다르다고 정의되는 이들과 함께 작업하고 투쟁하는 가운데 자아를 드러냄으로써 우리는 스스로를 정의해야 한다. 흑인과 백인, 노인과 청년, 레즈비언과 이성애 여성 모두에게 이것이 생존의 새로운 경로이다. (pp.209-210, 나이, 인종, 계급, 성) . 분노에 대한 저의 두려움은 제게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못했습니다. 여러분도 분노를 두려워한다면 거기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할 것입니다. (pp. 211-212, 분노의 활용) . 혐오는 우리와는 추구하는 목표가 다른 자들의 격분이며, 그 목적은 죽음과 파괴입니다. 분노란 우리들 사이의 왜곡된 관계를 슬퍼하는 감정이고, 그 목적은 변화입니다. (p.221, 분노의 활용) . 우리 삶의 모든 부분에 만연한 여성 혐오보다 유색 여성의 분노가 당신들에겐 더 위협적인 것인가요? 우리를 파괴하는 것은 다른 여성의 분노가 아닙니다. 우리를 파괴하는 것은 분노의 소리를 듣지 않겠다는, 그 안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않겠다는, 분노를 표명할 뿐 그 본질에 가닿으려 하지 않는, 그리고 그 분노를 힘 기르기의 중요한 원천으로 활용하려 하지 않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pp.222-223, 분노의 활용 ) . 여성은 두려움을 갖도록 교육받고 분노를 피하지 못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위협을 받습니다. 폭력에 대한 남성적 인식틀에서 우리는 여자의 일생은 가부장적 권력의 선의에 달려 있다고 배웠습니다. 우리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타인을 화나게 하는 일은 피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분노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곤 고통 밖에 없다는 식이었습니다. (...) 하지만 여성의 힘은 우리 여성들 사이의 차이를 창조적인 것으로 인식하는 데 있습니다. 또 아무런 의심 없이 우리가 물려받은, 하지만 이제는 우리 것이 되어 버린, 그래서 우리가 변화시켜야 할 그 왜곡된 관계에 맞서 싸우는 데 바로 우리 여성의 힘이 있습니다. 여성의 분노를 통찰력 있게 활용하면 차이를 힘으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동료 사이의 분노는 파괴가 아니라 변화를 낳습니다. (pp.225-226, 분노의 활용) . 우리가 단결하기 위해 균질화된 초콜릿우유처럼 구별 불가능한 입자의 혼합물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단결이란, 원래는 저마다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던 다양한 요소가 결합한다는 뜻이다. (...) 너무나 자주 우리는 과거를 무시하거나 낭만화함으로써, 단결의 근거를 백해무익하거나 신화적인 것으로 만들고 있다. (pp.239-240, 1960년대로부터 배울 점) . 나를 쓰레기-같은-흑인-여성이라고 재단하는 백인 세계의 평가를 내가 마음으로 받아들인다면, 결국 나는 내가 진짜 아무 쓸모없는 존재라는 것을 마음속 깊이 믿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깊이 흡수된 혐오를 정면으로 마주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 따라서 내가 당신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내 편을 들어 준 거라면, 그것은 당신이 그저 나와 똑같이 아무 쓸모없는 존재임을 보여 줄 뿐이다. 이것은 모두가 패배할 뿐인 입장이자, 그 누구도 편들어주지 못하는 쓸모없는 경우이다. (...) 내가 나의 가치를 인식할 수 있을 때라야, 비로소 나는 당신의 가치를 알아볼 수 있다. (p.325, 서로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 흑인 여성인 우리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일은 "흑인은 아름답다"는 단순화된 주장을 넘어선다. "흑인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이 좋은 출발점이긴 하지만, 흑인 여성으로서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은 흑인의 아름다움에 대한 피상적 이해를 넘어 더욱 심층적 차원으로 나아간다. 그렇지만 우리 스스로와 서로를 되찾으려는 탐색이 "흑인은 아름답다"는 구호에 머무른다면, 자아에 대해 또다시 피상적 평가를 내리는 것일 뿐이다. (p.336, 서로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 대상화와 죄책감을 넘어, 서로의 얼굴을 마주볼 수 있는 여성은 모두 환영입니다. (p.230, 분노의 활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