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고운

진격의 거인 3기 Part 2
평균 4.5
우익 관련 논란만을 제외한다면, 이 작품은 헤세의 데미안 혹은 카뮈의 이방인과 비교 가능할 정도의 철학과 성장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시각적 완성도 또한 매우 높다. 타인을 위한 희생, 국가를 위한 희생은 결국 죽음 앞에서 무의미한 것일까? 그렇게 따진다면 인생 자체는 무의미한 것일까? 살아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살아있는 자들은 죽은 자들을 기억함으로써, 죽은 자들은 살아있는 자들에 의해 기억됨으로써 존재하고, 그것이 의미있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경우 우리는 ‘취해있다’.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에 혹은 술에, 명예와 그 어떤 무엇이든 간에 우리는 헤롱헤롱 취해있다. 그렇지 않으면 삶의 무의미성이 너무나 명확히 보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는 자들은 대부분 현실 속에서 취해있기 마련이다. 작품의 벽에 유비하여 우리는 결국 하나의 벽을 뚫고 나오면 또 하나의 벽을 마주하고, 무한한 벽에 휩싸인 삶에서 하나 하나의 벽을 뚫음으로써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 아닐까? 막상 벽을 뚫고 나면 또다른 벽의 존재를 알게 되고 또 그 벽을 뚫고자 하는 목표를 가짐으로써 삶의 의미를 회복하게 되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하고있는 또는 살고있는 삶이 아닐까. 그 와중에는 또한 딜레마가 존재한다.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서는 무엇인가를 버려야 한다. 마치 작품 속에서 인간이 시조의 거인을 얻고 평화를 잃게 된 것 처럼, 우리는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선 무엇인가를 포기할 용기를 가져야 한다. 원하는 것을 얻기위해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 적절하게 알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다수인 점이 문제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