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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영 화

주 영 화

7 years ago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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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동

영화 ・ 2019

평균 4.0

하나의 육체에 어찌 이토록 많은 맥락이 관통할 수 있을까. 여성, 노인, 위안부 피해자, 외면받았던 소수자, 인권운동가, 제3세계 아이들의 위인, 한때 누군가의 아내, 동지, 상처입은 한국 역사의 상징, 전쟁범죄의 피해자, 산증인, 아니 이제는 죽어 없는 인류사의 영웅, 변방의 히어로. 그리고 이 모든 맥락을 기꺼이 한 몸에 떠안기를 각오한 작은 몸은 당신의 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증언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그 어떤 영화에서도 이처럼 다층적인 영웅을 본 일이 없다. 아마도, 앞으로도, 언제까지라도. + 내가 김복동 할머니를 영웅이라고 호명한 이유가 있다. 실질적 근거는 국경없는 기자회가 ‘자유를 위해 싸우는 세계 100인의 영웅’에 넬슨 만델라 등과 함께 김복동 할머니를 선정했다는 것이다. . 그와 별개로 나는 히어로물을 좋아하고 히어로에 대해 고찰하기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영화 <김복동>을 볼 때 ‘위안부 피해자’라는 꺼풀을 벗겨낸 인간 김복동을 마주하기 위해 노력했다. 아이언맨은 수트를 벗으면 “백만장자, 플레이보이, 천재 과학자”가 된다. 물론 이게 전부는 아니지만 여튼 생각해볼만한 것은, 히어로는 결코 하나의 정체성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정체성의 충돌에서 기인하는 인간적인 혼란과 고뇌, 시련,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을 우리가 영웅이라 칭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뭐라고 불러야 할까. . 내가 <김복동>에서 마주한 사람은 정말로, 정말로 다층적인 사람이었다. 나는 누군가의 딸이자 대한민국의 대학생이자 취준생이자 누군가의 친구로 살아가는 것도 이렇게나 힘들고 벅찬데 김복동 할머니는 그 많은 맥락들을 약한 노인의 몸으로 전부 감당하고 계셨다. 영화가 끝나고 짧은 GV에서 김복동 할머니의 가장 가까운 곁에서 함께 생활하고 투쟁하셨던 윤미향 대표님이 ‘할머니는 길에서 사신 분’이라고 말했을 때, 나는 할머니의 고통을 결코 헤아릴 수 없을 것이라고 느꼈다. 이미 그분은 자의든 타의든 일제강점기에 고통받았던 조선의 상징이 되었고 한일 갈등의 최전선에서 이리저리 이용당하는 골칫거리 혹은 소모품이었으며 반군에게 성노예로 끌려갔었던 제3세계 아이들에게 생활의 터전과 학교를 후원해주는 희망, 교토조선중고급학교에서 재일교포이면서도 소외받는 아이들의 학업을 위한 후원자, 피해자 동생에게 농담을 건네는 친근한 언니이자 동지, 매주 수요일에는 말 그대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자리를 지키고 서서 끝이 보이지 않는 투쟁을 하셨던 분이었고 지구촌의 자연재해와 인재와 인권에도 관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발언하셨던 인권운동가셨다. 위안부 할머니라는 수동적인 피해자 위치가 아닌 적극적인 인권운동가로서 활동하신 그분을 나는 영웅이라는 단어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 좋은 영화를 감별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좋은 다큐멘터리를 감별하는 것이다. <김복동>은 기교를 부리거나 무리한 스토리텔링을 하거나 과도하게 무언가를 주장하는 다큐가 아니다. 그저 우리는 ‘위안부 할머니’로만 알고 있었고 그 이상 알려고 애쓰지 않았던 한 사람, 김복동을 담아낼뿐이다. . 영화관에 가서 봐도 좋고, 시간이 지나고 개인적으로 찾아봐도 좋다. 그러나 여리고 약하기에 매번 앉아만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당당하게 두 발로 일어서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마이크를 쥐고 단호하게 발언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편견을 깨고 싶다면, 꼭 극장에서 볼 것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