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소설을 읽어주던 전기수란 직업은 1960년대까지 장터에 남아있었다 했다. 50년대 무성영화가 사라지며 변사들도 이미 다 실종된 마당에. 조선시대 동문 밖 서 구연을 하던 그 치들이 광복을 한 뒤에도, 이승만도 아니고 박통 때도 남아 있었다고. 그런데 그 사람 할아버지가 전기수 소식으로 신문에 난 사람이었다고 했다. 가장 오래 버틴 전기수로 난 게 아니라 종로에서 소설 듣다 이야기에 분을 못 이겨 전기수를 때려죽인 사람으로 신문에 걸렸었다고. 그럴 사람이 아니었는데. 그 사람 이모는 사람을 너무 많이 죽여서 감옥 갔다고 했다. 그럴 사람이 아니었는데. 자기가 쓴 소설 속 등장 인물들을 얼마나 학살했는지 여느 범죄소설보다 많이 죽였고 전쟁 소설보단 덜 죽이는 편이었다고. 그래도 이모는 행갈이를 안 해 책 페이지를 조금 썼고 그로 인해 나무를 보호하는 사람이 됐다고. 삼촌은 가로등 사이마다 발걸음 수를 세며 걷는 사람이었지만 닭 먹을 때 다리 두 개를 다 몰아서 나 주는 사람이었다고. 고모는 채무에 대한 상도덕은 없었어도 눈이나 비가 오면 가만히 맞는 감성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남편은 죽어서도 꿈에 나타나 안부 묻는 사람이었다고. 작은 아버지는 죽어서 꿈에 나타나 의절을 풀어줬던 사람이었다고. 그 할머니는 꿈에 나타나 로또 번호를 점지해 줬다고. 그 구구절절하고 시시콜콜한 말들을 다 듣고나니 나도 조금 위로가 되었다고
좋아요 51댓글 5


    • 데이터 출처
    • 서비스 이용약관
    • 개인정보 처리방침
    • 회사 안내
    • © 2024 by WATCHA, Inc.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