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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뉴욕시와 화성시 - <무지개 너머, 마샤 존스의 삶과 죽음>을 보고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두 눈으로 가장 먼저 확인한 소식은 경찰이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를 특정했다는 속보였다. 집에 들어와 티비로 뉴스를 보는데, 그 광경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내가 마치 어떤 영화의 결말 부분을 보고있는 것 처럼 생각됐다. 꼭 <살인의 추억>이 아니더라도, 여느 연쇄살인 이야기들에 끼워맞춰도 이상하지 않을 엔딩. 그는 30년 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KBS 뉴스의 남성 앵커는 이 소식의 포문을 이렇게 열었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은 국가가 국민을 지키지 못했던, 군부독재 시절의 무능을 상징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참 의외의 시작이었다. 어느 연쇄살인사건을 당시의 정부와 연결시키는 논리가 급진적이었지만, 내 마음에 들었다. 평소 보수적인 KBS의 목소리치고는 의외라는 생각도 들었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발생 자체와, 열명의 피해자가 발생하는 와중에도 살인을 멈추지 못한 점, 십수년 동안 미제사건으로 남겨놓아야 했던 점 등은 정부의 실책이라면 실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곧장 의문이 들었다. 이 사건이 만약 지금, 동시대에 발생했다면, 이것은 여성혐오 범죄사건으로 명명되지 않았을까? 현재의 시각으로 여성혐오 범죄로 재평가하는 것이, 군사정권의 폭압으로 해석하는 것 보다 더 타당한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 이런 고민을 하던 찰나에, 다큐 <무지개 너머>를 보게 되었다. 이 작품은 완전 정공법으로 잘 만든 다큐의 전형이고, 화려한 편집술과 음향효과 없이 단백하게 만든 파운드 푸티지다. 다큐는 마샤 존슨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을 추적하면서, 미국 사회에 만연한 이반혐오, 그 중에서도 트랜스젠더 혐오를 고발한다. 나는 마샤의 죽음이 어느정도 수위까지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하며 다큐를 관람했다. 마샤의 죽음 그 자체는 혐오범죄(혹은 편견 범죄 bias crime)로 일어난 것이지만, 그 이후의 사건 은폐와 무마에는 국가권력이 가담한 일이었다. 구글링을 해보니 마샤의 사망 당시가 부시 행정부 당시였는데, 음 모 보수정권이랑 굳이 연결시키자면 연결할 수 있겠군했다. (근데 진보정권이었어도 똑같았을 듯....)마샤의 쥭음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정치적인 것일까. 다시 화성으로 돌아와서, 그렇다면 우리는 같은 질문을 피해자 여성들을 대상으로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의 죽음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정치적인 것일까. 그들은 여자라서 죽었나? 그렇다. 그것은 여성혐오 범죄였다. 그렇다면 이러한 여성혐오에 국가는 얼마나 깁숙하게 개입했나? 물론 화성의 경우엔, 여자가 죽었다는 이유로 사건을 은폐한다거나 하지는 않았었다. 엄청난 인원을 투입해 수색했으나 실패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지난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을 두고 경찰이 보인 태도는, 거의 은폐에 가까웠다. 다른 성폭력, 불법촬영, 버닝썬게이트 등등을 수사하는 경찰들의 태도도 매한가지. 강남역 살인사건을 두고는 이것이 여성혐오 범죄가 아님을 경찰이 끝까지 부인했고, 여성이 피해자가 되는 범죄들에 경찰은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 마샤가 뉴욕 경찰들에게 받았던 취급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소수자 앞에 국가행정과 법이 공정해질 날은 언제올까ㅠ 서럽다 (이사 해야해서 급하게 마무리) 2019.09.22. Z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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