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K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
평균 3.4
기지촌 여성, 성폭력 피해자 등 생존자의 증언은 어떻게든 '언어'를 경유하여 전달될 수밖에 없으므로 필연적인 각색, 서사화, 불안정성을 내포한다. 그렇다면 이 '증언'은 누구의 관점에서 어떻게 서사화되어야 하는가? 이러한 측면에서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는 증언들이 '제3자에 의해 필요한 부분만 취사선택되는 경향'의 위험성을 드러내고 이에 도전하고자 하는 작품으로 읽혔다. 다큐와 픽션의 경계를, 인터뷰 대상자와 연기자의 경계를, 말하는 자와 듣는 자의 경계를 유동적으로 넘나들며 새로운 서사의 가능성을 만들어낸다. +) 흥미로웠던 감독들 인터뷰 내용 공유: 서울독립영화제 '이야기되지 못한 이야기들' - <임신한 나무과 도깨비> 김동령, 박경태 감독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27006810&memberNo=37618212 ++) 아래는 영화를 보면서 생각났던 책의 구절. 버틀러, <지상에서 함께 산다는 것>, 제7장 프리모 레비와 현재 중 일부 발췌 "증언은 기억이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기억은 전송되고 지속되기 위해 이야기에 의존한다. 언어는 기록하고 보존하고 전송하는 일을 가끔은 함께 해낸다. 그뿐만 아니라 언어는 자신이 기록하고 보존하고 전송하는 재료에 예외 없이 어떤 작용을 가한다. 가령 헤이든 화이트가 주장하듯이 레비에게 증언은 "지시체(referent)를 생산한다." ... 만약 그 사건들이 듣는 이에게 전송되어야 한다면 사건들은 우리를 위해 지시체를 생산하거나 편곡할 수사적 용어, 그것을 명료하게 만들고 의미를 부여할 수사적 용어로 중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pp.357-358) "서사에 영향을 끼치지 않고서는 서사의 '다시 말하기'도 '다시 살기'도 불가능하다면, 이러한 영향 끼치기는 이야기의 중계에 결정적인 것이며, 이야기에 필수적인 수사적 차원 중 하나를 형성하는 것이다. ... 그러나 이야기를 전해받은 사람도 이야기를 다시 말한다. 외상의 효과는 - 그 외상과 함께 온 의지(volition)의 위기와 나란히 - 전송되지만, 기원이 갖고 있던 목적으로부터 멀리 벗어날 수 있다. 이 점이 내게는 결정화에 항상적으로 도사린 위험으로 보인다."(p.3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