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로

열차 안의 낯선 자들
평균 3.8
히치콕의 강박증을 엿볼 수 있는 <사이코>의 전신 * 히치콕의 영화는 명확해서 좋다. 이 영화에서도 이런 강점이 드러난다. 두 남자가 기차 객실에서 만나고, 영화는 마치 영상으로 선택지를 만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명확한 스릴과 미스테리를 끊임없이 던진다. 영화의 전개는 대략 다음과 같다. 스토커처럼 성가시게 구는 남자, 브루노는 유명 테니스 선수 가이가 이혼할 아내에게 적의를 품고 있는 것을 알고 교환살인을 제안한다. 브루노는 가이에게 자신의 아버지를 죽여달라고 부탁한다. 제안을 받은 가이는 이를 받아들일까? 브루노가 살의를 품은 이유는 무엇일까? 누가 먼저 살인을 저지를까? 가이가 경찰에 신고를 할 것인가? 그리고 가이가 브루노의 아버지가 있는 저택에 도착했다. 거래를 받아들일 것인가? 이처럼 영화는 맥락적인 이분법을 제시하며 관객이 흥미를 잃지 않도록 유도한다. 때때로 노골적인 클로즈업을 시도해 특정 사물에 관객의 의식을 쏠리게 만들어 자신이 의도한 방향으로 관객을 끌고 온다. 대단한 기교는 아닐지 몰라도, 굉장히 효율적이고 속도감이 있는 기법이라고 생각한다. (스포일러) 그런데 수많은 선택지 중에 싱겁게 끝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누가 먼저 살인을 저지를 것인가?'이다. 영화를 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 사람은 브루노이다. 브루노는 자신감이 좋고 영리하며, 집착도 강한 인물이다. 하지만 가이의 동의도 받지 않고 거래를 진행시킨 브루노의 행동은 그답지 못한 섣부른 짓이었다. 왜 그런 것일까? 짐작컨데 브루노가 가이의 분노를 과대평가했기 때문이다. 나는 부르노가 가이에게 선망을 품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극중 부르노는 정신이 온전치 못한 어머니를 제외하고는 누구와도 어울리지 못한다. 파티에서는 홀대받고, 말을 거는 사람에게는 차갑다. 감독의 후작 <사이코>의 은둔자, 노먼 베이츠와 유사한 인물이다. 반면, 가이의 인간관계는 원만한 편이다. 가족중에도 딱히 사이가 나쁜 사람이 없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브루노와는 대조적으로 테니스 경기중에도 진중하다. 자신과는 대조적이며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유명인사, 가이에게 선망을 품던 브루노는 어쩌다 그가 이혼을 하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지금의 아내에게 염증을 느끼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이때부터 브루노의 선망은 공감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아버지에게 분노를 느끼고 있는 것처럼, 자신이 존경하는 인물도 비슷한 분노를 느끼고 있을 것이라 추측한 것이다. 실제로 가이는 비슷한 분노를 느끼고 있었으며, 아내를 죽이고 싶다고 생각한다. 다만 정도의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가이가 결말에서 브루노를 아주 영리한 사람이라고 평한 것도 동질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유사한 감정을 가지고 전혀 다른 결말을 맞이한 이 둘은 히치콕이 만든 아치에너미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사실 정작 브루노의 아버지가 어떤 이유로 분노를 샀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영화의 아버지들은 구체적인 언행없이, 그저 굳세고 고지식한 인상의 '아버지'로서 존재할 뿐이다. 이것은 히치콕이 구체적인 언행이 아닌, '아버지란 원래 이런 존재다'라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 같다. 히치콕이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외에도 히치콕의 사적인 공포가 반영된 부분이 있다. 바로 경찰들이다. 히치콕의 아버지가 훈계의 일종으로 어린 히치콕을 경찰서의 철창에 가둔 경험이 있다고 한다. 이 탓인지, 영화에서 경찰들은 미덥지 못한 존재로 등장한다. 가이는 곤경에 처하고도 경찰이 진실이 아닌 증거만을 쫓는다고 판단하고 경찰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 오히려 경찰은 가이의 방해꾼에 가깝다. 결정적으로 결말부에서 회전목마의 관리인을 총으로 쏴 일을 그르친 경찰의 행동에서 히치콕의 비판의식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열차 안의 낯선 자들>은 매우 사적인 히치콕 영화라 할 수 있다. 특히 브루노는 히치콕 본인의 공포, 분노, 강박증을 의인화한 캐릭터이다. 언젠가 들었던, 영화에서는 자신의 공포까지 다뤄야 한다는 그의 말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