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또기

분석심리학 이야기
평균 3.8
* 투사 원시사회에서는 속죄양을 만들어서 그 동물에게 온갖 죄를 다 뒤집어씌우고 그것을 제물로 삼음으로써 각자가 짊어질 도덕적 책임을 면하려는 풍습이 있었다. 그것은 현대사회에서도 되풀이되고 있다. 모든 잘못이 내 타시라고 하기엔 너무나 괴롭다. 사람들은 그것을 남의 탓으로 돌림으로써 마음의 평안을 찾으려 한다... 그러나 동시에 자신의 무의식에 있는 또 하나의 마음을 외면하게 된다. 우리는 괴롭더라도 남의 탓으로 돌리기 전에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 투사되어 있는 것은 자기의 무의식의 일부분이다. 융은 프로이트와 달리 투사를 방어기제로 보기 보다는 자연현상으로, 또한 그 현상의 원인뿐 아니라 목적을 보고자 한다. 누사되는 것은 반드시 우리 마음속의 미숙한 '그림자'뿐 아니라 자기가 인정하지 않고 있는 좋은 성격의 부분까지 포함한 여러 가지 다양한 내용들이 있다... 그는 자기가 '잘난 면'을 가지고 있는 것을 모르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투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어떻게 투사가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를 알 수 있을까. 어떤 특정한 사람이나 대상에 대하여 강렬한 감정을 느낄 때, 그 대상에게 집착하여 헤어나지 못하게 될 때, 더구나 그 이유를 잘 알 수 없을 때 우리는 그 대상에 무엇인가 자기의 무의식적인 것을 투사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내가 누구를 격력히 비난하고 싶어질 때 우리는 한번 그것이 우리의 그림자의 투사가 아닌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가 누구를 더 없이 찬양할 때도 마찬가지다. '남을 다스리기 전에 먼저 스스로 수행하라-수기치인' * 페르소나 페르소나는 집단정신의 한 부분으로 자아의식이 외부세계와 관계를 맺을 때 필요로 하는 여러 기능의 복합체, 즉 기능콤플렉스이다. (외적인격) 페르소나는 그 사회집단이 공동으로 정해 놓은 행동규범, 가치판단의 기준들에서 그 예를 볼 수 있다. 그러니 자기의 페르소나를 확실히 알려면 자기가 자라 온 사회의 전통과는 전혀 다른 문화를 가진 나라로 가서 자기와 다른 집단의 사고, 판단, 가치관과 부딪쳐 볼 필요가 있다. 한 가난한 집안의 장남으로서 열심히 일하며 평생 부모를 모시고 동생들 뒷바라지하는 것을 보람으로 삼아 온 사람이, 동생들과의 극히 사소한 말다툼 끝에 크게 실망하고 지금까지 자기가 해 온 일이 모두 헛것임을 깨닫고 우울해져서 여기저기 몸과 마음이 괴로워..이는 페르조나와의 극단적인 동일시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선생 체면어 어떻게 그런것을....." 이런 말이 나올 때 그 사람은 페르소나에 많이 동일시 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체면이 강조되는 곳에 페르소나의 경직성이 있고 노이로제(Neurosis;신경증)의 씨앗이 있다. 사회가 나에게 주는 모든 칭호를 벗어 버릴 때 우리는 자유로워지고 우리 안의 본성이 숨 쉴 수 있다. 그러나 페르소나를 무턱대고 벗어 버린다고 바로 자기실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므로 사회집단과 함께 사는 규칙을 배워야 한다... 그러므로 청소년, 성인 초년기엔 오히려 페르소나는 적극적으로 형성되고 강화되어야 한다. 페르소나는 없애야 하는 것이 아니라 구별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환경의 영향으로 만들어졌고 환경에 대한 적응의 표현이며 환경의 요구에 대한 자아의 타협으로 만들어진 산물이다..그러므로 그것은 덮어놓고 버려야 하는 것이라기보다 적절하게 사용하면서 진정한 자기 자신과 구별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페르소나와 지나치게 동일시하면.. 사회적으로 표면상, 혹은 일시적으로 주위사람으로부터 칭찬을 받고 유능한 직원으로 펴창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개인이 페르소나와 동일시하면 할수록 그는 어쩔 수 없이 내면의 마음을 소홀히 하게 되고 자기 자신에게 유리한 생활을 지속하게 되어 마침내 여러가지 좋지 않은 징후를 나타내게 된다. 이는 모범적인 직장인이 집에 오면 폭군으로 변하는 이중적 성격 변화에서...이런 징후는 그 사람의 삶이 그 사람의 본성에서 분리되어 있다는 위험신호인 도시에 그 사람으로 하여금 밖으로 향한 시선을 자기의 내면으로 되돌리고자 하는 무의식의 의도에서 나온 것들이다. * 심리학적 유형 사람들끼리의 관계에서 서로 오해하고 실망하는 가장 큰 이유중의 하나는 다른 사람이 자기와 같은 마음일 것이라는 생각 또는 그래야 한다는 잘못된 기대 때문이다. 심리학적 유형학설은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각종 오해와 알력의 근원을 설명해 줄 뿐 아니라 바로 그 오해와 알력을 통해서 각자의 열등기능을 확인하고 또한 그것을 발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어떤 사람이 무슨 형에 속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내가 남에게 무엇을 투사하고 있고 무엇을 발전시켜야 하는가를 보고 이를 실천하고자 하는 자세가 중요한 것이다. * 그림자 개인이 투사를 통해 상대방에게 비춰진 자기의 그림자를 인식한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그러나 내가 비난하는 그런 성격이 내 속에 숨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으로 성숙을 향한 노력을 끝낼 것인가. 분석심리학은 여기서 한 걸음...'그림자를 살리라'는 것이다. 평생 남의 흉을 본 일도 없고 매사에 예의 바르고 ... 여성이 꿈에서 자기가 제일 싫어하는 유형의 여자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본다. 그 여자는 자기와 정반대로 욕도 잘하고 자유분방...그녀는 자기가 싫어하는 성격 부분이 사실은 자기의 무의식 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돼... 분석가는 그녀에게 화가 나면 욕도 좀 하고 남의 흉도 좀 보고 남의 눈치 보지 말고 멋대로 행동을 해보는 것이 곧 그림자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살리는 길이라고 말했다. 그림자를 활성화시킨다고 해서 그 사람이 '나쁜 성격'의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림자는 표현을 통해서 긍정적으로 변화된다. * 원형 전 세계적으로 각 나라의 민담들에서 공통된 특성들을 찾아 볼 수 있는데 한 예로 괴물이 나와서 세상을 어지럽히고 이에 영웅이 등장해 괴물을 무찌르고 평화를 되찾아 오는 괴물퇴치설화가 그 예시이다. 세계 도처에서 일어났고 현재도 일어나고 있는 크고 작은 집단 간의 갈등 (종교전쟁, 나치, 테러 등)을 보면 집단이 부르짖는 적의 정체가 바로 신화의 괴물상이며 이에 대항하는 집단은 악의 무리를 쳐부수는 거룩한 전쟁에 참여한 영웅이라고 주장한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 인간의 마음속에 그런 신화를 산출해내는 원천이 있기 때문이다. 융이 말하는 집단적 무의식은 바로 그와 같은 '신화의 샘'이고, 그것을 구성하는 많은 원형적 콤플렉스는 신화의 핵, 즉 신화소를 뜻한다. 문제는 우리가 신화를 우리 마음 안에 있는 것으로 보지 않고 그 신화의 주인공과 혼동(동일시)하거나 신화 속의 적대적 존재를 밖으로 투사하여 그것이 마치 밖에만 있는 듯이 착각하는 데 있다. 원형상의 투사는 비상한 힘과 흥분을 느끼는 등 강렬한 감정을 동반하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다. 사람은 융의 말처럼 '자기가 무슨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지 알지만 콤플렉스가 그를 가지고 있는 것은 모르는' 상태에 빠진다. 그 또는 그녀는 '성전에 참여한 전사'가 되며 그것은 자신의 무료하고 우울한 일상에 '뜻'을 부여한다. 그러나 밝혀야 할 어둠이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데 그것을 모르고 밖의 부정만을 탓한다면 이것은 심리학적으로 '맹목적 상태', 즉 '무의식적 상태'이고 그것은 결코 근본적인 치유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불완전한 통찰은 불만을 낳고 사람들은 그 모자라는 것을 채우기 위해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시위에 참가해야 하는 중독현상.. 집단은 항상 인간의 무의식의 신화층을 자극하는 경향이 있고 인간들은 집단 속에서 쉽게 분별을 읽고 무의식의 원형상들에 사로잡힐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지적하려는 것이다.. 정치선동자나, 매스컴이 대중의 집단적 무의식을 의도적으로 자극하는 경우가 있다. 개개인이 무의식의 원형상을 밖으로 투사하거나 자아가 이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 자신을 성찰하고 관조하는 태도를 갖춘다면 세상은 많이 편안해지고 '성숙'해질 것이다. 집단과의 동일시에서 장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의식된 삶을 사는 것'(!!!), 분석심리학의 '개성화'의 본래 뜻은 바로 여기에 있다. * 대화 때로는 이치에 안 맞는다 하더라도 인내성 있게 또한 진지하게 경청하는 태도를 길러야 한다. 그리고 그녀가 호소하는 것이 말이 아니라 사랑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 마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서 이를 말로 표현할 필요가 있다. "당신의 그 말은 맞는 말이다." 이 한마디로 대화의 문이 활짝 열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