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석미인

석미인

5 years ago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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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디네

영화 ・ 2020

평균 3.7

1 운디네의 해석은 독점적일 수밖에 없다. 날 사랑하지 않으면 널 죽여야 된다고 물의 정령이 선포하는 데서, 영화는 시작되고 초반 10분 동안 베를린이라는 도시의 내력을 하염없이 설명하니까. 내가 아는 거라곤 인어공주 동화에서 언니들이 왕자를 칼로 찌르지 않으면 너가 죽어하던 기억의 토막뿐인데. 2 감독의 전작인 트렌짓에서 주인공이 한 남자의 죽음을 알리던 장면을, 그 공간을 좋아한다. 먼저 아이에게 사실을 말하고 아이는 듣지 못하는 어머니를 위해 수화로 아버지의 죽음을 알린다. 모자는 끌어안고 슬퍼한다. 아버지의 죽음을 전해 들은 아이에겐 슬픔의 시차가 발생한다. 아이는 슬픔을 유보한다. 다음번에 그 집을 다시 찾아갔을 때 그는 라디오를 고쳐주고 아이에게 노래를 불러준다. 아이의 어머니가 들어와 그에게 자신은 들을 수도 없는 노래를 다시 들려달라 부탁한다. 어머니는 아이에게 노래를 불러줄 수 없었으니까. 영화가 마법같은 순간은 그 공간 안에서 특별히 통용되는 따뜻한 질서를 느낄 때이다. 이 질서를 따라 영화의 배역들은 각자에게 도리를 다했고 영화의 모든 선택을 나는 수긍했었다. 3 부득이하게 사랑한 죗값을 죽음으로 갚아야 하는 게 왜 동화여야 했을까. 운디네 설화와 관련이 있으려나. 아이들이 읽었을 인어공주의 페이지는 한 손에 사랑을 다른 한 손엔 죽음을 이었지만. 실제로 안데르센의 동화에서 인어공주는 물거품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말 그대로 하늘나라로 영전하는 다른 형태의 정령이 되는데 이 영화의 마지막 시점 쇼트와 꼭 같다. 시점은 있지만 육체는 사라져 공기처럼 부유한다. 4 그녀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어떤 방식으로 사랑과 죽음의 협약이 체결되는지, 베를린의 도시공학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딱히 담론을 찾아 읽고 싶지 않았다. 그들을 이해하고 싶게 만드는 영화의 특별한 질서를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으니까. 다만 마지막 장면만은 오묘하고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어떤 유효한 해석이라도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을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