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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인공의 남자친구는 어린 나이에(?) 연애의 권력관계를 체득한 남성성을 보여 주고, 은희는 이성애의 상처를 반복한다. 한편, 은희가 죽도록 좋다며 과감한 대시를 마다 않던 소녀는, 갑자기 은희를 모른 척 한다. 은희가 이유를 묻자 "(언니를 좋아한 것은) 지난 학기의 일"이라고 말한다. 은희의 단짝 친구 지숙은 함께 도모한 좀도둑질을 은희에게 뒤집어씌운다. <벌새>는 사랑 '받는'사람이 피해자임을 보여 준다.  10대의 문제일까, 시대의 문제일까. 은희의 친구, 남자친구, 후배는 모두 자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기 필요에 의해 은희를 사랑의 대상으로 이용한다. 그들에게는 얼마든지 대체재가 있다. 신자유주의 시대는 극단적인 개인의 시대지만, (인권 개념에서) 개인은 그 안에서도 다른 누구로도 환원되지 않는 고유한 존재여야 한다. <벌새>는 그렇지 않은 현실을 보고한다.   사랑에 필요한 것은 영원한 약속이 아니라 영원하지 않을 관계를 끝낼 때,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일이다. 그래서 "사랑은 아무나 하나", 이 말은 언제나 명언이다. 사랑은 윤리적인 사람만이 시도할 수 있는 행위다. 가족은 이러한 윤리를 제도로 대신하려는 체제다. 당연히 실패할 수밖에 없다. 호주제 폐지 운동 당시의 구호대로, 가족을 지키는 것은 성姓이 아니라 사랑이기 때문이다./p.243  남성 중심 사회란, 공적 영역의 권력을 남성(남성 연대)이 독점하는 구조를 말한다. 이때 여성의 '가치'는 남성 네트워크에의 접근 가능성 혹은 자원 있는 개별 남성과의 관계 여부에 의해 정해진다. 남편이든 아버지든 애인이든 권력 있는 남성의 무한 사랑을 받으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동화(신화)에서나 가능하다. 가부장제는 보호해야 할 여성, 그렇지 않은 여성, 그렇지 않아도 되는 여성을 구분하는 권력이다. 여성의 지위는 개인의 능력에 의해 정해지기보다는, 권력 있는 '아버지의 딸(박근혜)'일 때 결정적이다. '아버지의 딸, 공주'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기득권 중 최고의 지위다. 남편과 아들의 보호는 보증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폭력과 노동이 따른다. 사회적, 심리적 안정을 성취한 여성들은 아버지가 조건 없는 사랑으로 딸을 응원하는 경우다. 그렇지 않은 여성들은 매일매일 긴장하고 싸워야 한다./p.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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