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환

솔트번
평균 3.1
이카루스의 날개가 떨어지다. 하늘 더 높이 날아오르고자 한 욕망 때문이 아니라, 욕망에서 태어난 미노타우루스로부터. 나도 감각적인 미친 영화가 되고 싶다고 호소를 하는 쪽에 더 가깝게 느껴지지만, 미쳤다기엔 얄팍하고 화려하지만 감각적이지 못하다. 방금 내가 뭘 보고 온 거지 싶다. 이게 이렇게 흘러갈 영화였나. 극장을 나왔던 제법 많은 사람들이 호평을 하는 것 같아서 궁금하다. 과연 나만 별로였는지. 어느 부분에 호를 느꼈을까. 분명히 이 영화가 싫었는데, 그럼에도 잠깐 다시 생각해 보긴 했다. 내가 극장에서의 미친 경험과 감정에 속고 있는지. 영국의 엘리트 계급만을 비판한 것이 아닌, 양 측의 계급의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그런 사회 문제를 시사하는 바는 겉핥기 식이다. 애초에 이런 영화에서 주로 다루고 싶은 것은 아니었겠지만, 꽤나 노골적으로 계급 문제를 다루고 있기에 전혀 노리지 않았다고 할 순 없었던 영화다. 4:3의 비율 아래, 영화 속 궁전의 천장이 유난히 더 높아 보이면서도 괜히 닿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구조를 지니고 있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영상미를 가진 영화는 그 안에서 서서히 미쳐 날뛰기 시작한다. 그 부분을 제외하고서라도 영화 구조적으로 결말로 다가가기까지의 후반부는 격을 한층 떨어뜨리는 쉽고 힘 빠지는 연출이다. 그래서 더욱 반전에 대한 강박도 잘 이해가 가질 않는다. 그래도 어지간하게 미쳤으면 더 싫었을 텐데, 이 영화에서 몇몇 부분은 선을 넘는 정도가 제법 과하다. 퀴어 영화라고 해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같은 영화를 기대하지 말라. 욕망으로 점철된 대저택의 미로를 정신 없이 휘젓고 다니는 이 영화는 올리버 스톤의 “내츄럴 본 킬러”나 “서스페리아” 정도의 영화가 생각날 정도니까. 호불호가 많이 갈리려나. 나는 완전한 불호의 입장이다. 미쳤다거나 충격적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이는 순간적이고 관성적인 반응이었다. 그렇다고 좋은 의미로 미친 영화라는 뜻은 아니다. 이런 영화에서 미친 영화라는 말은 칭찬으로 받아들이기 십상이니까. (뭐, 이 정도까지 보여줬으면 칭찬의 의미도 있긴 하다.) 곱씹어 보면, (굳이 곱씹어 보지 않더라도) 단순한 자극에 불과하다. 미쳤다기엔 얄팍하다. 화려하지만 감각적이지 않다. 의도한 불쾌함도 그 효과는 내게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라스 폰 트리에 영화 중 가장 싫어했던 “살인마 잭의 집”의 역겨움이나 불쾌함과 비교를 하기에도 실례다. 이 영화의 자극에는 무의미한 관음처럼 명분도 없다. “살인마 잭의 집”은 괘씸해서 싫었는데, 이 영화는 나도 감각적인 미친 영화가 되고 싶다고 호소를 하는 쪽에 더 가깝게 느껴졌다. 나는 쉽게 알아들으라는 친절하고 쉬운 풀이, 그리고 건강하지 못한 연출들을 보면 소화가 잘 안되는 타입이다. 가뜩이나 소화가 안 되는데 워낙에 자극적인 장면들이 많은 영화라 많이 버겁긴 하다. 이것이 영화적 경험이라고 말하고 싶진 않다. 그 정도로 힘들지는 않으니까. 이 영화는 배리 키오건 아니면 누가 또 연기를 할까 싶다. 다 떠나서 영화는 전혀 지루하지 않다. 어떻게 보면 넷플릭스 시리즈(엘리트) 같은 느낌도 있다. 단순하게 즐길 수 있는 영화. 제법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의 선을 넘는 것들을 즐길 수도 있겠다. 좋은 의미로나 나쁜 의미로나 진짜 너무 가는구나 싶은 영화니까. 미침을 표현하는 연출의 방식이 단순하고 얄팍했다는 뜻이었지, 미쳐도 단단히 미친 영화라는 말은 변하지 않는다. 기묘한 해방감까지 주는 영화의 엔딩도 같은 이유로 인상적이다. 이 영화가 재밌을 것 같다거나 미쳤다는 반응에 더 흥분이 된다면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사족을 붙이자면, 이 영화는 해로운 영화다. 이런 류의 영화들은 오히려 해롭다는 말을 더 듣기 좋아한다. 그렇지만, 냉정하게 그 정도는 아니다. 어정쩡하고 어설픈 양아치가 자신이 나쁜 남자인 줄 알고 거기에 심취해있는 사람을 보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