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천수경

천수경

8 months ago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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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

영화 ・ 2025

평균 3.6

큰동생의 장인 장모를 만나는 상견례에 다녀왔다. 막내와 나는 가기 귀찮다고, 부모님들끼리만 만나면 안 되느냐고 앓는 소리를 했고. 우리 중 가장 보수적인 큰동생은 이미 식당 예약을 마쳤다는 말로 일단락지었다. 그 애랑 결혼한다는 여자는 내가 실물로 본 웬만한 배우보다 아름다웠다. 함께 온 여동생도 마찬가지였다. 자매의 미모에 일차적으로 충격 받은 나는 괜히 막내한테 말을 걸었다. 너 여자친구는 대통령 후보 누구 지지해? 큰동생은 당장 대화를 중단하라는 눈빛을 보냈다. 나는 원래 유령처럼 있다가 오는 게 목표였으나, 화사하게 차려입은 상대편 가족의 모습에, 긴장되어서 일찍 일어났다는 동생 장인어른의 말에, 자세를 고쳐 앉았다. 사돈 가족이 우리를 보며 활짝 웃었다. 나도 외교적인 미소로 화답했다. 나의 큰동생은 사돈 가족의 집에서 종종 주말을 통째로 보내고, 그 가족이 유럽 여행을 갔을 때 강아지를 돌보았을 정도로 친밀하다. 결혼할 사람의 동생과는 서로 반말을 섞어 쓸 정도다. 예비 신부의 동생은 중학교 국어 선생님인데, 무례할 정도로 폰을 자주 보는 나와 우리 집 막내에게 말을 걸려고 애쓰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나와 막내는 거의 모든 말을 자학 개그로 받아쳤고, 그녀는 앳된 얼굴과 달리 산타할아버지처럼 호탕하게 웃었다. “학생들에게 인기 많으실 것 같아요,”라는 나의 말에 그녀는 손사래 쳤다. 큰동생이 입만 열면 장인 장모가 빵빵 터졌다. 걔는 집에 있을 때보다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평소에 무얼 하시느냐는 질문에 산에 간다고, 뭘 좋아하느냐는 질문에도 산을 좋아한다고 답하는 우리 엄마를 두고 “엄마는 무슨 타잔이야? 모든 일상이 산에서 이루어져?” 하면서 언젠가 장모님의 전시회에 가서 그림을 보라고 했다. 나는 예비 신부와 말을 거의 안 했다. 숭고한 일을 하면서 돈까지 잘 버는 그녀가 어른들의 폭력적인 대화에 조금도 불편함을 못 느끼는 듯했기에. 그것을 방조이자 공모로 여기고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았다. 그러면서 사돈 동생에게만큼은 관대해져서 그녀가 들고 온 필름 카메라에 관해 이것저것 알려주었다. 최근에 산 터라 기본적인 것들도 모르는 상태였다. 한국 문학을 좋아하진 않느냐는 내 질문에 문학에 관심 없다고 답한 건 용서했다. 동생의 장인과 장모는 다정하고 재미있는 사람들이었다. 유머 감각이 곧 인성이라는 내 이론의 근거가 될 이들. 그런 두 사람이 일구어나간 가정은 당연히 화목했다, 화목이라는 표현 따위가 평가절하처럼 느껴질 정도로. 서로를 온전히 믿고 함께 식사하는 일을 위안으로 여기는 그런 가족이었다. 예비 신부와 할아버지의 각별한 관계에 대한 일화를 듣다가 나는 그만 아찔해졌다. 식사에만 백만 원을 썼다는 그 자리가 내 큰동생의 잔인한 행위예술처럼 느껴졌다. 자신이 입양될 새로운 가족을 찾아서 우리 부모님에게 들이미는 징벌이자, 두 사람이 수십 년간 저지른 잘못을 직접 느끼게끔 하는 체험 학습이었다. 상견례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 차에서 “그 집 아버님 진짜 재미있으시다,” “그 집 동생 성격 진짜 좋다,”라는 말을 연신 반복한 나와 막내는 그 공연에 기꺼이 동참했다. 엄마와 아빠는 피곤하다는 말 외엔 별말이 없었다. 지금 사귀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어하는 막내는 상견례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나는 상견례를 한다면 즉석떡볶이 프랜차이즈 <두끼 떡볶이>에서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 식사를 떨쳐내기 위해 급하게 나의 연인을 찾았다. 그가 “나 보고 싶지?” 물었을 때 솔직히 보고 싶어서 보는 게 아니라 봐야 해서 보는 거라고 했다. 진통제를 먹고 싶어서 먹는 게 아닌데 알약을 털어 넣으면서 “널 정말 먹고 싶었어,” 하는 건 기만이니까. 사돈 가족이 얼마나 서로를 아끼는지, 얼마나 내 동생을 따뜻하게 받아들여 줬는지 말하면서도 나는 남자친구가 상기시켜주길 바랐다. 온 가족이 X당을 뽑는다며.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막상 그가 그렇게 나오자, 나는 그 가족이 얼마나 사랑으로 가득한지 직접 봐야 한다면서 언성을 높였다. 먹고살기 바빠서 정치 따위 크게 생각 안 하고 우리가 증오하는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다정하고 아름다울 수 있는지 직접 보여주고 싶었다. 그 가족의 추한 면모를 다 덮을 수 있을 정도로 실존하는 분명한 아름다움이 있었던 것 같아서 답답했다. 그들을 온전히 한심하게 여길 수가 없는 내 마음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남한테 상처 주는 말은 죽어도 못하는 사람들이더라.” “이 시국에 X번 뽑는 게 무수한 사람들한테 상처를 주는 거지.” “그건 나도 알아.” 뭐 이런 식의 대화가 이어졌다. 말을 하면 할수록 나의 모습이 멋없는 것 같아서 관뒀다. 세상엔 위의 상견례 같은 일들이 널렸다. 최소한 내 인생엔 그렇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에서 주인공이 굴복하지 않길 바랐다. 본질적으로 추한 무언가 속에 작은 아름다움 하나가 있더라도 가뿐히 무시하길, 본질적으로 아름다운 것 속에 작은 추함이 있다고 해서 지레 겁먹고 도망치지 않길. 우아한 모습으로 천박한 어른들이랑은 단호하게 결별하길. 모양새는 경박할 수 있어도 진정 숭고하다면 끝까지 추구하길. 폭력이 난무한 여자친구의 집에서 취해 잠들었던 밤, 혼자 헤매다가 발견한 사진 한 장엔 여자친구의 어릴 적 모습이 담겨 있었을까. 그걸 보고 미소 짓는 그의 얼굴이 내 마음을 녹였다. 어떤 심정으로 그 사진을 애틋하게 여길지 알 것만도 같아서. 어디선가 들려온 기타 소리를 그가 음미하는 모습도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맑은 선율을 연주하는 손가락을 타고 올라가면 험한 말을 뱉은 입이 있다는 걸 남자도 알 테니까. 그리고 그는 사랑에 굴복한다. 더 좋은 차를 사기로 한 것만도 같다. 자신이 선택한 것들이 불러오는 피로에 스스로 나가떨어진 것이다. 이 결말에서 나는 무엇을 느껴야 할까. 강인하지 못한 남자에 대한 연민? 그를 무릎 꿇리고 만 사랑의 힘? 재능 없는 시인은 시를 쓸 수 없는 세상의 엄혹함? 날마다 그 결말에 대한 내 생각이 조금씩 다르다. 어떤 날은 후련하다. 언제까지고 온실 속 화초일 수 없는 한 사람이 잔혹함을 진정으로 마주한 것이, 그에 응답한 것이 후련하다. 어떤 날은 홍상수에게 화가 난다. 이미 다 아는 세상을 굳이 세밀화로 그려내서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이 영화가 다소 악의적이지 않나. 또 어떤 날은 되려 굳세어진다. 이 영화를 백신처럼 맞은 것이다. 아직은 저 남자처럼 굴복하고 싶지 않은 이들에게 영화가 연습게임을 선사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