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별,
4.0

공포분자
영화 ・ 1986
평균 3.9
마치 유령처럼 배회하는 누군가들은 존재의 이유를 찾지 못해 고통받는다. 누군가는 끊임없이 글을 쓰고, 누군가는 끊임없이 사진을 찍으며, 또 누군가는 그저 방황하며 과거의 존재했음을 토대로 현재의 허구적인 존재를 만들어내며 안간힘을 쓴다.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발 붙이고 있는 현실만을 보며 버틴다. . 정확하게 설명되지 않는 누군가들의 방황이 우연을 빌어 느슨하게 이어질 때 허구는 아이러니하게도 실재를 압도하여 지배한다. 누군가의 소설은 허구가 사실이 되어버린 듯 현실에서 힘을 얻고, 누군가의 사진은 형태만 남아버린 과거의 기억으로 아예 무화되어 현실로 이끈다. 그러나 존재를 지탱하던 끈이 허구로 인해 좌절되어버린(듯한) 누군가의 현실은 허구를 이겨낼만한 힘이 없다. . 허구는 현실이 아니다. 그러나 허구는 또한 현실로서 현혹될 수 있다. 일종의 자기 기만을 통한 허구로의 도피. 어쩌면 현실을 감내하여 버텨내기 위해 필요할지도 모르는, 또 다른 층위로서의 현혹된 허구를 받아들이기엔 누군가는 너무 순수했는지도 모른다. 아니, 너무 용기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또는 실존이라는 험난한 버팀의 안간힘이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결국 누군가는 끝까지 용기내지 못하고 허구로서의 종결을 환상으로 미뤄둔채 실존으로부터 도피한다. 그것은 현실을 맞닥뜨리는 순수의 차원에서는 모든 것을 정리하는 아름다움이나, 생존의 차원에서는 모든 것을 외면하는 비겁함이다. 그러나 허구로의 도피로 생존한 누군가를 마냥 긍정할 수 있을까. 누군가의 토악질은 살아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니 살아남았기에 느낄 수 밖에 없는 실존의 메스꺼움이다. 누군가들은 결국 모든 것을 함께하는 하나의 누군가가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