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감성혁명

감성혁명

7 years ago

4.5


content

아사코

영화 ・ 2018

평균 3.8

영화에서 은유와 상징이 이용되는 경우는 많지만, [아사코]는 아예 영화 자체가 은유와 상징으로 읽힌다. . '외모는 똑같지만 성격은 반대인 두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고 방황하는 한 여자의 사랑 이야기'. 이 영화가 흥미로운 설정에서 시작된, 남녀간의 달달하면서도 씁쓸한 사랑을 그린 전형적인 멜로드라마로 보여질 수 있겠지만 (그렇게 이 영화를 보아도 괜찮긴 하겠지만), 그건 이 영화가 두르고 있는 외피에 불과하다. . 이 영화의 원제와 일본에서의 개봉 당시 제목은 [寝ても覚めても], 번역하면 [자나깨나], 칸 영화제 출품 당시 제목은 [Asako I & II]. 우리나라에서는 그냥 [아사코]... . 아사코와 바쿠가 처음 만나는 공간이 사진전시회. 아사코는 한 쌍둥이자매의 사진을 뚫어지게 본다. 그 전시회와 그 사진은 아사코와 료헤이의 관계에서도 등장하고. 사진 속 쌍둥이자매의 모습을 아사코의 내면으로 치환해 본다면, 결국, 이 영화는 아사코의 내면적 분열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 그리고 아사코의 분열을 초래하는 것도 하나의 인격이 쪼개져 나누어진 것 같은, 외모는 같지만 성격은 정반대인 두 남자이다. 나쁜 남자 바쿠와 착한 남자 료헤이, 유목형 인간 바쿠와 정주형 인간 료헤이, 언제든 떠나갈 수 있는 바쿠와 언제든 옆에서 지켜줄 것 같은 료헤이, 오로라라는 환상을 보고 싶어하는 바쿠와 현실의 강물을 바라봄에 만족하는 료헤이, 거친 파도를 일으키는 바다와 같은 바쿠와 그 파도를 막아내는 방조제와 같은 료헤이. . 2008년 오사카, 2011년 토쿄, 2016년 토쿄와 오사카를 배경으로 세 사람의 삶의 궤적과 내면을 좇는 이 영화에서 감독은 사랑을 일종의 재난으로 다룬다. 더 구체적으로는 지진이다.. 전진(前震), 본진(本震), 여진(餘震)의 세 단계를 차례로 밟는. 이 영화가 2011년 3월 11일에 발생했던 동일본 대지진을 모티브로 했음은 분명하다. 전시회장 앞, 아이들이 벌이는 폭죽놀이는 전진. 만나자마자 키스를 나누며 사랑에 빠지는 본진. 아무 말없이 떠나버린 바쿠를 잊지 못함으로써 아사코의 내면에 수시로 격랑을 일으키는 여진. 그리고 바쿠가 아사코에게 지진이었던 것처럼 료헤이에게는 아사코가 지진이다. . 료헤이의 접근을 애써 거부하던 아사코가 그의 사랑을 마침내 받아주던 그 날은 바로 2011년 3월 11일. 한 쪽 방향으로 걷는 사람들의 무리 속에 섞여 료헤이는 아사코를 애타게 찾고 홀로 반대방향으로 걸어 온 아사코는 마침내 포옹으로 료헤이의 사랑을 안는다. 아사코에게 닥친 지진이라는 재난이 그녀의 내면에 닥쳤던 바쿠라는 지진을 새삼 연상시키기라도 한 듯... . 그리하여 이 영화는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국가적 재난이 일본인들에게 안겨준 트라우마를 세 남녀의 만남과 헤어짐의 과정에 투영함으로써 재난 이후 그들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고 어떻게 달라져야 할 지를 말하고자 하는, 깊고 깊은 속내를 감춘 작품으로 보아야 한다. 자연을 정복함으로써 문명을 일으켰고 자본주의의 시스템 안에서 모든 걸 통제할 수 있다고 여겼지만, 자연이 안기는 재난에 여전히 무력한 인간들. 더욱이, 일본인들이 겪은 재난이 그들만의 고난과 상처가 아님을 감안하자면, 예측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삶의 전개 속, 인간의 실존적 불안을 다루는 테마를 품은,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실제가 훨씬 더 큰, 그런 영화로 읽어내는 것이 옳지 않을까. . 아사코는 수시로 잠을 자고 깬다. 특히, 쓰나미 피해를 입은 센다이 지역으로 료헤이와 함께 자원봉사를 다녀오는 차 안에서, 8년 만에 자신을 찾아온 바쿠의 손을 잡고 무작정 그를 따라가는 차 안에서. 잠에서 깨어난 후의 아사코는 잠들기 전의 자신과 다른 결정과 선택을 한다.. 아사코의 내면적 각성과 결단을 가져오는 시점은 이렇게 꿈을 꾼 후이다. "눈을 떠 보니 나는 전혀 변한 게 없었어." 라고 아사코 스스로는 말하지만 그녀는 분명 꿈을 통해 달라졌다. 현실이 아니라 꿈을 통해 성장하는 아사코라는, 기가 막힌 역설을 통해서 감독은 현실과 꿈의 경계를 무너뜨린 채, 우리네 삶이 어쩌면 한 번의 긴 꿈일 수도 있음을, 우리가 삶에서 체험하는 모든 유형의 불안이 하나의 꿈일 수도 있음을 말하고 있다. 깨어남으로써 극복되는 꿈처럼, 우리의 불안과 무력도 꿈처럼 극복될 수 있음을... 또는... 꿈을 소거한 삶이 불가능하듯 우리의 불안과 무력도 그냥 안고 살아가야 함을... . 잠시 배우들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 먼저 타이틀롤을 맡은 '카라타 에리카'. 재작년 국내 한 스마트폰 광고에서 신선하고도 청초한 마스크로 시선을 사로잡았던 그녀. 배우로서의 그녀는 처음 만나는데, 자신의 역량에 비해 버거운 인물을 맡았음에도 무난한 수준에서 표현해내는 데 성공한다. 이제 막 배우로서의 삶에 출발점에 선 그녀를 계속 응원하게 될 것 같다. . 이 영화의 중심을 굳건히 잡아주는 건 '히가시데 마사히로'. 바쿠, 료헤이의 일인이역을 완벽히 소화한다. [키리시마가 동아리 활동을 그만둔대](2013),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2016)로 이미 스크린에서의 압도적 존재감을 증명한 그는 향후 일본의 가장 위대한 배우들 중 하나로 성장할 것. . 조연들 중에서는 '오카자키' 역의 '와타나베 다이치'와 '마야' 역의 '야마시타 리오'가 상당히 좋았다. .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장면 하나하나, 카메라의 앵글 하나하나에도 의미가 담겨있기에, 조금은 더 집중해서 볼 필요가 있는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동일본 대지진의 발생을 포착하는 지점이다. 마야가 출연하는 연극을 료헤이가 보러간다. 원래 아사코는 낮공연을, 료헤이는 밤공연을 예약했지만, 이별을 선언한 아사코를 보고 싶은 마음에 료헤이는 낮공연에 찾아가고 아사코는 반대로 낮공연에 가지 않는다. 둘의 마음과 동선이 정반대로 엇갈린 상황에서 마야의 공연이 시작되기 직전, 극장 전체가 흔들리고 사방은 암흑이 된다. 이후 벌어지는 아비규환의 상황을 영화는 침착하고 차분한 톤으로 그려낸다. 아사코와 료헤이의 극적인 재회를 추가하면서. 그 덤덤한 묘사는 넘칠 듯한 슬픔을 은은하게 다독여 가라앉히는, 묘하고도 신비로운 위로를 준다. . 바쿠를 따라나선 아사코는 차 안에서 잠이 들었다가 센다이 어느 해변 방조제 앞에서 깬다. 바쿠에게 이별을 선언한 그녀는 방조제 위로 올라가 마침내 바다를 마주한다. 그녀를 집어삼킬 듯한 바다의 요란한 굉음 앞에서 아사코는 스스로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는 료헤이에게로 돌아간다. 오사카 한적한 곳, 그들이 계획했던 새 보금자리로. . "이런 날이 올까봐 두려웠어. 지난 5년 동안." 아사코가 떠날까봐 늘 두려웠던 료헤이는 그녀의 짐과 고양이를 버렸다며 돌아온 아사코를 매정하게 문전박대하지만, 사실 료헤이에게 그건 애시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 여기서 이동진 평론가의 한줄평으로 돌아가자. "모든 것은 두 번 반복된다. 그렇다면 두 번째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 아사코와 료헤이는 새 집 베란다에 나란히 서서 폭풍으로 불어 흐르는 강물을 바라본다. 료헤이는 더럽다고 말하고 아사코는 아름답다고 말한다. . 료헤이는 언제라도 홀연히 떠날 수 있는 아사코라는 지진을 늘 불안해 하면서 다시 그녀를 사랑할 것이고, 아사코는 바쿠라는 존재가 남긴 여진 속에 다시 찾아올지 모를 또 다른 지진을 불안해 하며 료헤이 곁에 다시 머무를 것이다. . 그 선택이 잘못이냐고? 잘못은 없다. 그것이 삶의 아이러니이고 비슷한 상황에서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들의 숙명일 지도 모를 테니. . 두 번의 반복에도 똑같은 선택을 할 그들 앞을, 더럽고도 아름다운 강물이 도도하게 흐른다. 그 둘을 지켜보며... . . http://m.blog.naver.com/hixxhim/2214907784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