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천수경

천수경

2 years ago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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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집의 정령

영화 ・ 1973

평균 3.9

누가 죽고 누가 살지 어른들이 정한다. 전쟁은 그렇게 웃기다. 입고 있는 옷이 원피스인지 군복인지에 따라 즉살 또는 참호의 여부가 갈린다. 태생부터 보호가 주어진, 선택받은 아이는 인간의 몸에 심장도 폐도 필요하다는 걸 배워나가는 것만으로 칭찬받는다. 의자를 직접 들고 가서 보는 영화 상영회에선 화면 속 사람들의 슬픔을 흥미롭게 응시할 수 있고, 영화 속 괴물은 이따 설명해준다는 언니의 약속을 종일 생각할 수도 있다. 영화는 다 뻥이라고 선언하는 언니도 ‘시체 놀이’를 마무리할 땐 배시시 웃을 수 있다. 죽은 척 사람을 놀리는 일이야말로 우리네 삶을 되레 축하하는 저릿한 행위라서. 삶에 손을 내미는 것인 줄 알고 건넨 선물은 저승의 바닥까지 찍고 유턴하여 안나에게로 돌아왔다. 군인을 죽인 결정적 총알이 뚫은 건 심장이었을까 폐였을까. 안나의 작은 몸을 보자마자 총구를 거둔 남자는 뿌듯했을까. 감히 죽음이 다가가지 못하도록 결계가 쳐진 듯한 두 눈동자를 질투하진 않았을까. 불가사의한 만큼 멋지고 흥분되는 정령을 소환해서 아이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열린 창문 틈으로 아이는 사라진 사람들을 달래주는 말을 읊었을 것이라 믿는다. 내 말을 꼭 전해달라고, 간청했을 거라고 믿는다. 어디선가 죽음을 훑고 온 시원한 바람은 정령이 아닐 수 없다. 그 온도와 무게가 닿아 있는 것들을 애도했으리라 믿는다. 아이의 순수를 지키겠다는 명분으로 침묵한 어른들을 응징할 지조가 저 밤으로부터 비롯될 거라고 믿는다. 순수는 그렇게 아이의 손으로 해체되기 위해서만 애초에 존재한 것이라고 믿는다. 개천에서도 용이 난다는 말은 저런 풍경을 두고 하는 말이라고 믿는다. 시체 국물이 섞인 개천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신 용이야말로 가장 높이 날 수 있다고. 가장 많은 이들을 살릴 수 있다고 정말로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