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Non-zero-sum game!" (Amy Adams as Louise) 통번역 입문 첫 시간에는 출발어와 도착어, 두 가지 개념을 배운다. '출발어(departure language)'는 통번역의 대상이 되는 언어를, '도착어(arrival language)'는 결과가 되는 언어를 말한다. 한영 통번역의 경우 한국어가 출발어, 영어가 도착어가 된다. 영화 속 루이스의 입장에서는 헵타포드 언어가 출발어, 인간 언어가 도착어가 된다. 통번역은 단순히 출발어를 도착어로 옮기면 끝나는 작업이 아니다. 모든 통번역가는 한걸음 더 들어가려 노력한다. 출발어와 도착어 각각의 의미가 정확히 일치하는 지점, 즉 '등가(equivalence)'의 지점을 지향한다. 문제는 등가가 출발어와 도착어 사이 정확한 거리상 중간지점에 위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령 "헬로(hello)"는 맥락에 따라 '안녕하세요'가 될 수도, '여보세요'가 될 수도, 심지어 '저기요'가 될 수도 있다. "웨폰(weapon)"이 '기술'이 될 수도, '선물'이 될 수도, '무기'가 될 수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등가의 지점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각 언어의 어휘와 표현을 모두 알고 있다 하더라도, 그중 맥락에 맞는 짝을 찾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헬로"를 안녕하세요, 여보세요, 그리고 다른 수많은 표현 중 어떤 것으로 옮길지 결정하기 위해서는 그 '맥락'을 온전히 이해해야 한다. 루이스가 방호복을 벗고 손을 뻗어 '접촉(contact)'을 시도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출발어를 도착어로 옮기는 일은 언제나 새롭고 어려울 수밖에 없다. 맥락에 접촉하면서 매번 달라지는 등가의 지점을 찾아야 한다. 두 언어에 이미 능통한 통번역가라도 쉬운 일이 아닐진대, 헵타포드 언어를 배워가며 등가의 지점을 찾는 일은 못해도 몇 배는 더 어려웠을 것이다. 어렵지만, 끝내 찾아낸 도착어는 '등가를 넘어서는(non-zero-sum)' 힘을 갖는다. 지구에 왔다가 떠나간 헵타포드가 인류에게 진보를 선물한 것처럼. 루이스에게 와서 먼저 떠날 한나가 이안을 만나게 한 것처럼. 우리네 삶에도 출발과 도착이 있다. 시작과 끝을 모두 안다 하더라도, 그것을 직접 사는 것은 분명 완전히 새로운 일일 것이다. 매순간, 매순간에 '도착'해야 삶은 비로소 의미가 있다. 그렇게 등가를 넘어서는 가치를 찾아 만끽하다보면, 마지막 순간에 되돌아본 삶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좋아요 1533댓글 22


    • 데이터 출처
    • 서비스 이용약관
    • 개인정보 처리방침
    • 회사 안내
    • © 2024 by WATCHA, Inc.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