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국에는 수많은 한스 기벤란트가 있다. 한국의 한스는 어떤 이들이냐면, 일단 고등학교때는 충실히 내신관리에 힘써왔다. 국영수 어느 하나 모자라지 않는다. 실로 약한 부분이 있을지라도, 과외든 학원이든 규율 아래 자신을 어떻게든 끼워맞춘다. 또 한국의 한스는 생각보다 토론에 약하다. 그들은 주입식 수업에 마음이 편안해지며, 대화형 수업에서는 침묵을 고수한다. 혹은 입으로 토론을 강조하나 막상 말을 시키면 자기 생각은 못 내놓고 학자의 생각을 요약 정리하는 친구도 한국형 한스 기벤란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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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한스가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해서 대학을 가게 되면, 술도 먹고 사람도 만나면서 자기 만의 길을 찾는 듯 싶다가 거대한 수래바퀴를 인지하게 된다. 규율이 요구하는 스펙에 자신을 끼워맞춰야 한다. 그러려면 학기 중에는 학점공부에 매진해서 최대한 개인성을 죽여야 하고, 방학 때는 토익이나 봉사 혹은 대외활동으로 외부로부터 온 선택을 최대한 많이 만들어 낸다. 누가 더 많은 활동을 재는 건 곧 누가 더 규율권력에 순응하고 있는지를 비교하는 재밌는 활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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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한스는 회계사, 변호사, 의사 등 전문직에 관심이 많을 것이다. 사회에서 고평가받기도 하고, 돈도 나름 괜찮게 벌고, 피상적인 흥미를 갖기에 적성에도 부합하듯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피상성을 근거로 그 직업을 ‘천업’으로 삼아 한국형 한스는 제발로 수래바퀴 아래로 들어간다. 그 수래바퀴 아래서 한스는 신음하고, 또 괴로워하고, 점점 규율을 내면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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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한국의 한스는 없다. 그는 바람직하게 제도가 원하는 부품으로 거듭난다. 이 부품은 제도를 부정하는 담론에 혀를 끌끌 차며 온갖 자유를 추구하는 행태를 억압한다. 그렇게 한국의 여러 한스를 통해 체제는 유지되고, 개인성은 말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