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 수경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평균 3.5
나는 언제나 정치적이고 싶은데 그러기가 쉽지 않다. 채식주의를 막 다짐했는데 할머니가 소고기국을 한 움큼 뜨면서 내 그릇에 특히 고기가 많이 담기도록 신경 쓰실 때. 너무 사랑하는 띠동갑 사촌 동생이 다이어트를 한다고 할 때. 중학생들한테 왜 SPC를 불매해야 하는지 설명하려다가 애들 부모님 중에 가맹점을 하시는 분이 있진 않을까 생각이 스칠 때. 누군가 밤마다 안방 문틈 사이로 새어나오는 부모님의 고민 때문에 어떤 마음 고생을 하는지 나는 모르니까. 그런 순간들의 돌파구가 될 수 있는 건 결국 용기다. 내게 늘 부족한 것. 지금 너와 나의 처지 말고 먼 곳 누군가의 처지를 우선시하는 게 어떻게 돌고 돌아 너와 내 처지를 더 낫게 하는 것인지 말이라도 해볼 용기. 입을 뗄까 말까 고민하는 순간들에 용기의 근거가 될 이야기를 알고 있다면 서로 공유하는 게 맞다. 그래서 이런 소설들을 쓰는 사람도 있다. 세상을 알아갈수록 낙관이 오만이 아닐까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치밀하지 못한 낙관은 비관보다 쓸데없다고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래서 이 소설집이 좋다. 감히 희망이 있어도 되는 곳들만 정확히 겨냥하는 느낌. 그리고 그 화살이 날아가는 행로를 논리와 지식이 받쳐주기 때문에 믿음이 간다. 높은 곳에 있는 것들 중에 낮은 곳에서의 손길들로 이루어지지 않은 건 없다. 먼 곳에 있는 사람 중에 바로 이곳의 사람들이랑 크게 다른 사람도 없다. 내 삶과 관련 없는 삶 같은 건 없다. 나랑 관련 없는 사람 같은 건 없다. 모든 바다가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책을 덮은 지금, 세모바를 사랑한 사람들을 응원하고 로나의 창당을 지지하는만큼이나, 김기태의 목소리를 믿게 되었다. ‘기립’한 채로. *내가 얼마 전부터 주장하는 ”마의 27세론“이 있는데... 마의 27세를 잘 넘긴 사람들(=어른으로서의 책임감을 갖고 지구 반대편도 지척으로 느낄 수 있는 사람, 내 입으로 들어가고 내가 쓰는 사물들이 어떤 노동을 거쳐서 오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개좋아할 소설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