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Joy

Joy

5 years ago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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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르텟

시리즈 ・ 2017

평균 4.1

1. 단점도 많고 실력도 대단찮은 사람들이 콰르텟을 꾸린다. 바이올린 바이올린 첼로 비올라. 같이 산다. 서로 상처줄 말들을 잔뜩 주고 서로 이해되지 않는다고 끊임 없이 핀잔 주고. 그래도 웃는다. 그래도 함께 연습한다. 함께 밥을 먹고 같은 차를 탄다. 말마따나 같은 지붕 아래 같은 샴푸를 쓰며 같은 향기를 품는다. 대단한 기적은 일어나지 않고 짝사랑은 있지만 연애는 이뤄지지 않는다. 오히려 죄를 짓는다. 속이던걸 들키거나... 원치 않는 고백 같은 걸 서로 하고. 앓는 속내를 숨기고. 그런다. 기승전결은 기묘하다. 이 사람들 사이에는 완전한 결착도 결론도 여하튼 결이 없다. 싱겁고 시덥잖게 서로의 죄나 비극적인 과거 앞에 그렇군요, 그럼 밥은 뭘 먹을까요, 세상에 치킨을 그렇게 먹어요? 라고 한다. 뭐 그런 영화를 좋아해요? 그렇게 생각하면 아니죠, 정말 이상해요, 같이 말하면서 그냥 웃고 농담을 따먹는다. 그런데 네 사람이 함께 있으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보인다. 이건 드라마니까, 연출이며 감독이며 무대디자이너며 프로듀서며 모두 머리를 맞대고 이 사람들은 함께 밥 먹을 때 행복해야 해, 라고 말과 생각을 주고 받고 무대를 만들었을 것이다. 저 연기자들 네 사람은 아무렇지 않게 스스럼 없이 지어내는 행복한 표정을 연습하고 보였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컬트 같다. 가족이라는 신앙, 정상가족이라는 강박 같은 것 말고, “서로를 용서하고 받아들이고 그냥 같이 살아서 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의 공동체”라는 그 개념에 대한 신앙을 바탕으로 한, 컬트 같다. 말도 안되는 드라마고 도대체 애매하면서도 동시에 비현실적으로 끈끈한 관계들인데 오히려 그래서 수긍이 간다. 이 무서운 세상에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속수무책으로 나를 다 이해하고 받아들여주는 절대적인 구원자나 누구에게든 매력적으로 보이는 무한의 열정과 동기를 품은 나 자신도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아니까. 그냥 그나마 원하는 것은, 그냥 어정쩡하게 마음 편히 공존하며 서로의 심연을 마구잡이로 파고들지 않는, 또한 그러면서도 누추하거나 비상식적인 서로의 진실이 드러난대도 개의치 않는 그런 기묘한 공동체일지 모르니까. 내가 이상해도 상관 없는 이상하고 선한 사람들과 즐거운 순간을 가끔 공유하는게, 이 지치는 세상에 가장 안일하면서도 솔직한 희망사항일지 모르니까. 클래식은 너무 콧대가 높은 분야다. 아는게 많고 배운게 많고 가진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능숙하고 천재적인 사람들을 표준으로 삼기로 한 그런 취미와 생업의 장르다. 그런 분야에서 별이상한 과거를 가진, 능력도 없는 콰르텟이, 시대를 뒤흔들 것도 아니며 심지어는 디너바에서도 욕을 먹을 실력으로 서로를 생글생글 웃으며 바라보며 연주를 한다. 연주가 끝나면 같이 집에 돌아가 부먹인지 찍먹인지 따위의 이야기나 간식을 나눠먹으며 하다가, 설거지를 하고 서로에게 잘 자라고 한 다음에, 서로 숨겨놓은 짝사랑 심정 같은 걸로 청승을 떨거나 제 과거와 신세 생각이나 하면서 잠들 것이다. 그냥 그러려고 태어나고 산 사람들마냥. 대단한 것을 바라고 듣는 사람들은 도저히 그들의 연주를 견디지 못할 것이다. 심지어 열정조차 안 느껴진다고 말할 것이다. 실제로 그 정도로 필사적인 열정은 별로 없다. 바보 같을 것이다. 하지만 본인들은 행복하다고 한다. 그래, 그거면 된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보느라 이 드라마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2. 이 드라마는 대사들을 동시에 치느라 오디오가 겹치고, 피하고 싶은 질문에 다른 생뚱맞은 대답을 하고, 어디서 듣고 보도 못한 논리와 흐름으로 대화를 뒤집는 장면이 많다. 논리정연한 설교나 속시원한 고백을 의도하는게 아니라고 분명히 하고, 아픈 곳을 못본 척 넘어가주는 밍숭맹숭함을 몇차례나 어필한다. 이젠 알 것 같다. 상대의 마음을 배려하려는 사람들은 상대의 마음이 분명히 보일수록 부러 분명하지 않은 대화를 한다고. 거짓말을 믿어주고, 어리광을 눈감아주고, 변명에 납득되는 척하면서, 받아준다고. 때로는 불완전한 대화야말로 완전한 위로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