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최승필

최승필

6 years ago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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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기자

영화 ・ 2019

평균 3.6

[ 영화를 통해 ’코로나19’ 바라보기 ] (5)新聞記者: 뉴스미디어에게 희망은 없는가?(일본편) 영화 <나이트크롤러>가 적나라하게 보여주듯 뉴스미디어는 ‘선정성’으로 생존하려고 한다.. 이즈음의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여지없이 그런 Yellow Journalism은 늘 우리 곁에 있다.. 그렇게 과잉으로 드러내는 것이 문제라면 드러나야 할 것이 드러나지 않음도 문제인데, ‘선정성’의 두 겹의 죄악에서 우리는 곧잘 후자는 놓치기 쉽다.. <新聞記者>는 일본의 이야기인데, 일본 언론의 풍토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어쩌면 느낌이 제대로 와닿지 않을지도 모른다.. 2019년 ‘국경없는 기자회(RSF)’ 발표기준 언론자유지수 순위에서 일본은 67위였다.. (미국은 48위이고, 대한민국은 41위이다..) <新聞記者>는 분명 픽션임에도 자꾸 논픽션같은 착각이 드는 것은 그 때문이다.. ‘자민당’, ‘아베’라는 고유명사가 없음에도 자연스레 영화의 보통명사는 환청처럼 자꾸 고유명사로 들려온다.. 심은경은 실제 한국 배우이기도 하지만 극중 배역 역시 엄마가 한국인인 일본 기자인데, 어쩌면 감독은 일본의 꽉막힌 현실의 돌파구로 대한민국에 대한 부러움(?)을 차용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심은경은 암울한 일본 뉴스미디어의 ‘빛’을 상징한다.. 단, 영화의 열린 엔딩이 곧잘 멋짐인것과는 달리 이 영화의 열린 엔딩은 찝찝함인게 안타깝지만.. ‘코로나19’는 이렇게 새삼 국가별 언론지수도 생각하게 하고, ‘알린다는 것에서의 숨겨진 죄악’은 무엇인지 한겹 더 생각하게 한다.. 알려져야 할 무엇인가를 드러내지 않는것, 그건 분명 뉴스미디어의 또 하나의 죄악이다.. 실제로는 무죄였던 <빠삐용>의 죄가 ‘인생을 낭비한 죄’라고 꿈에서 계시되었듯, 선정성 넘치게 과잉으로 쏟아내는 미디어가 정작 중요한 것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마찬가지로 ‘Guilty!’를 면할 수 없는 셈이다.. 오늘도 또 다시 ‘숙주’를 깊이 생각한다.. 나쁜 뉴스의 숙주도 우리들이고, 착한 뉴스의 숙주도 우리들이라고.. ‘코로나19’ 상황에서 뉴스미디어들은 무엇을 놓치고 있는 것일까.. 그걸 불러내지 못하는 우리는 책임이 없는걸까.. 20200312 CGV여의도 (20.36) 덧) 너무 잘 생겨서 몰입에 방해되는 마츠자카 토리의 마지막 묵음(?) 대사는 갑자기 일본어를 배우고 싶게 하는데, 왠지 가슴 아픈 대사일 것 같은 느낌적 느낌이다.. 단, 검색해서 알게된 엔딩 크레딧 배경음악은 ‘어둠에도 빛이 비친다’는 가사로 시작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