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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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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year ago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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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낙인

영화 ・ 1967

평균 3.7

살인의 낙인은 처음부터 끝까지 기묘하다. 누아르 영화라고는 하지만 우리가 흔히 아는 그 장르의 문법을 따르지 않는다. 주인공은 냉혹한 킬러지만, 쌀 냄새에 집착하고, 논리적으로 행동하기보다는 본능과 강박에 휘둘린다. 암살 장면들은 현실적이라기보다는 어떤 기괴한 리듬을 가지고 있고, 인물들의 대사와 행동은 마치 꿈속에서 나오는 것처럼 어긋나 있다. 누아르라면 응당 있어야 할 서스펜스와 긴장감조차 이상하게 비틀려 있다. 스즈키 세이준은 여기서 이야기보다는 이미지와 감각을 앞세운다. 흑백 화면 속 극단적인 명암 대비, 기하학적인 구도, 비현실적인 공간 연출이 영화 전체를 감싸면서 일종의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특히 주인공과 ‘넘버 1’의 마지막 대결은 액션이라기보다 퍼포먼스처럼 보이는데, 두 사람이 서로를 쫓고, 겹치고, 반영되는 과정에서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다. 결국 이 영화는 암살자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욕망에 집착하다가 자멸하는 한 인간의 초현실적 악몽에 가깝다. 이런 영화가 당대 일본 영화계에서 받아들여질 리 없었다. 닛카츠 스튜디오는 이걸 보고 도저히 상업 영화라고 인정할 수 없다며 스즈키를 해고해 버린다. 하지만 지금 보면, 살인의 낙인은 단순한 누아르가 아니라, 영화라는 매체가 어디까지 파격적일 수 있는지를 실험한 작품이다. 논리보다는 감각으로, 서사보다는 스타일로 밀어붙이는 방식이 후대의 많은 감독들에게 영향을 준 것도 당연하다. 이 영화를 보면, 이야기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고 선언하는 듯한 스즈키의 태도가 느껴진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살인의 낙인을 특별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