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기연

수집가
평균 3.4
영화는 시작부터 세 개의 프롤로그를 제시한다. 첫 번째 프롤로그 '아이데'에서 아이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며 대신 카메라가 아이데의 신체를 대상화, 파편화하여 전시할 뿐이다. 두 번째 프롤로그 '다니엘'에서는 다니엘의 친구가 한참을 떠드는 동안 다니엘이 몇 마디로 자신의 입장을 피력하는 것이 한 씬 안에서 보여진다. 세 번째 프롤로그 '아드리앵'에서는 두 번째 프롤로그와 유사한 구조의 씬 하나를 거친 뒤 아예 카메라가 아드리앵의 동선을 따라 함께 움직인다. 프롤로그를 거칠수록 인물에게 할애되는 시간도, 씬도, 그 안에서의 인물의 입지도 커지기에 관객이 느끼는 심리적 동질감 역시 아드리앵에 가장 커지게 마련이다. . 그런데 프롤로그가 끝난 뒤 본편에 이르면 영화는 관객이 아드리앵에게 이중적 태도를 취하도록 요구한다. 아예 아드리앵의 나레이션을 따라 그와 동행하듯 영화가 전개되기에 관객은 극중 인물들 중 화자인 아드리앵의 입장에 가장 가까이 다가서게 되지만, 오히려 바로 그 나레이션의 존재 때문에 관객은 계속해서 이것이 영화임을 인지하게 되므로 화자 아드리앵의 입장에 완전히 몰입하지 못하고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 극중 인물들은 대개 자신의 행태에 비추어 남을(특히 유일한 여성 캐릭터인 아이데를) 쉬이 재단하고(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여성 수집가'란 단어가 극중에서 이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그렇기에 필연적으로 미끄러진다. 그 낙차가 가장 크게 드러나 보이는 것은 역시 관객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 아드리앵이다. 결국 스스로의 편협한 판단과 이에 기반한 위선을 정당화하는 데 있어서 가장 속이기 쉬운 대상은 그 누구도 아니라 자기 자신임을, 영화는 관객이 화자의 바로 가까운 자리에서 지켜보도록 한다. 아마도 그것이 바로 우리 자신의 얼굴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