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수준높은 비주얼리스트로 유명한 켄 러셀의 작품답게 처음부터 강렬한 이미지가 눈을 사로잡는다. 불타는 호수위의 집과 선과 악을 상징하는 이미지, 고치를 찢고 나오는 '인간'의 모습은 이 영화의 전위성을 관객에게 선포하듯 맹렬하게 다가온다. 전위적 이미지가 갖는 난해성을 러셀은 '회상'이라는 방식으로 간단하게 해결한다. 영리해 보이지만 또한 이미지를 '위한' 영화가 되지 않을까하는 불안이 영화를 보는 내내 나를 지배했다. 영화는 말러가 비엔나로 돌아오는 열차 안에서의 시간을 다루고 있다. 열차 안에서의 시간은 정방향으로 흐르지만 말러와 알마(말러의 부인)의 회상은 인물이 느끼는 감정을 중심으로 불쑥불쑥 끼어들듯이 들어온다. 이는 수평의 '현재'와 수직의 '과거'를 합쳐 영화 전체에 리듬을 주기 위한 의도가 아닐까 한다. 씬 간 연결만이 아니라, 씬 내부에서도 인물의 감정이 절정으로 치닫을때 들어오는 노래들 카메라의 줌인&아웃의 빠른 반복, 부감과 앙감을 통한 노래의 드라마를 표출해내는 방식 등 말러의 노래들과 조화를 이루고 이를 통해 말러에 대한 공감각적 체험을 제공하려는 시도가 보였고 실제로 그 시도들은 거의 성공적으로 영화 속에서 실현되었다. 영화의 네러티브는 크게 두 가지 측면을 동력으로 삼아 나아간다. '알마와 말러의 사랑' , '유대인이라는 정체성'. 쇠약한 육체로 인한 남성성의 상실과 그로 이어지는 사랑에 대한 말러의 의심, 반대로 재능 없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알마의 오해가 인물간 갈등의 주 동력이라면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사는 내내 차별을 경험하고 끝내는 유대교마저 버리는 선택을 하는 정체성적 측면은 말러 내면 갈등을 주도하는 동력으로 작용하게 된다. 전방위적으로 뻗어나가는 이미지들과 이를 감싸며 안정감을 주는 스토리는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까지 상호작용하며 무탈하게 흘러가지만 작위적이고 성급한 엔딩(사실, 감독의 무능이나 부주의라기보단 시대적 타협이라 보는게 옳을듯 하다.)으로 인해 약간의 아쉬움을 남기며 마무리 된다. 그래도 처음부터 걱정했던 '이미지'만을 위한 영화는 절대 아니었으며, 전기 영화 장르에서 충분히 손꼽을 수 있는 개성과 완성도를 선보인 '수작'임은 분명하다. 새로운 차원의 전기 영화를 맛보고 싶다는 당신이라면 이 영화, 가장 먼저 볼만하다. ※ 영화 보는데 전혀 지장없지만, <베니스에서의 죽음>을 먼저 본 사람이라면 아주 작은 기쁨을 영화에서 누릴 수 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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