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첼로에게 시모네는 아직 충분히 길들이지 못한 맹견이었고, 시모네에게 마르첼로는 언제든 데리고 놀 수 있는 충견이었다. 동네 사람들에게 마르첼로나 시모네는 둘 다 개새끼였고. 마르첼로는 끝까지 창피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시모네는 끝내 마르첼로에게 미안하다 말하지 않는다.
.
고통의 극점에 다다르기 전 선택은 둘 밖에 없다. 부러지든가, 구부러지든가. 구부정한 마르첼로는 동네 사람들과 가장 가까웠을 때조차 소외되어 있고, 출소 후 가장 멀어졌을 때는 고립되어 있다. 마르첼로는 어째서 그런 선택을 하는가?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 시스템이 아니라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온기가 아니더라도, 그것이 가장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
어째서 의지할 대상이 필요한가? 어째서 원하지 않는 일을 하게 되는가? 자기 삶을 자기가 책임진다는 것은 어떤 뜻인가? '도그맨'이란 제목은 더없이 적합하다. 영화는 '인견'의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의 이야기고, 삶이 어떤 적막으로 이뤄져 있는가를 응시하는 과정이다. 롱테이크는 그 적막의 황폐한 만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