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일본을 대표하는 ‘국민 게임’을 말할 때, 결코 뺄 수 없는 작품이 두 개 있습니다. 바로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와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죠. 옛날에는 라이벌회사였지만, 이제는 한 회사가 된 ‘스퀘어 에닉스’ 사의 대표 게임인 두 작품은 게임의 인기와는 별개로 영상화는 계속 엇갈렸습니다.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가 한창 애니메이션으로 나올 때는 파이널 판타지가 조용했고, 2000년대 이후로는 또 반대가 되었죠. <드래곤 퀘스트 : 유어 스토리>는 <드래곤 퀘스트 : 로토의 문장> 이후로 약 24년 만에 나오는 극장판 애니메이션입니다. 게다가 그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던 시리즈가 초기 ‘로토 사가’ 시리즈인 1-3이었기 때문에, 이후 작품에서는 최초로 영상화되는 기록까지 세웠습니다. (올해 초 TV 드라마를 통해 드래곤 퀘스트 10을 소재로 한 <어젯밤은 즐거우셨나요>가 방송했지만, 이건 온라인 게임을 소재로 한 로맨틱 코미디니 제외합니다.) 오랜시간 일본을 휘어잡은 게임인 만큼 작품 제작에 투입된 제작진도 무게감이 상당합니다. 총감독을 비롯한 주요 제작진은 IMAGICA(이매지카) 그룹의 계열사이자, <러브 레터>와 <춤추는 대수사선> 시리즈, 그리고 <도라메몽 : 스탠 바이 미>를 만든 ROBOT 소속입니다. 감독 및 실제 애니메이션 연출은 <도라에몽 : 스탠 바이 미>와 <프렌즈 : 몬스터섬의 비밀>을 만든 시로구미 이고요. (다만 총감독-제작진은 제로센과 가미가제 미화 논란이 된 <영원의 제로>에 참여한 제작진이기도 합니다.) 총감독의 전작인 <도라에몽 : 스탠 바이 미>나 <ALWAYS> 시리즈가 그랬듯 작품은 전반적으로 ‘과거에 대한 회고’와 ‘오랫동안 이어진 게임 시리즈에 대한 헌사’가 바탕입니다. <ALWAYS>가 시점 자체를 과거로 돌리며 회상을 시도하고 <스탠 바이 미>가 도라에몽이 원래 완결하려 시도했던 에피소드를 재현하는 방식으로 과거와 현재를 만나려 하는 것처럼 <유어 스토리> 역시 비슷한 방법론을 취합니다. 영화의 기본적인 베이스는 재현이지만, 이 시리즈가 이미 창작된지 오랜 시간이 지난 걸 무시하지 않는 것입니다. 동시에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가 이용자가 직접 플레이하는 ‘게임’의 속성에 주목하며, 다양한 장치를 심어 놓습니다. 아무리 게임이 실제처럼 진화해도 결국 ‘게임의 규칙’이나 ‘컨벤션’이라는 속성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영화는 초반 장면에서 이를 눈치챌 수 있는 요소를 넣은 뒤, 클라이막스에 이르러 ‘게임 자체’를- 더 나아가 ‘오랜 시간 인기를 얻어, 일본인 누군가의 추억이 된’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의 의미를 묻습니다. 아무리 <드래곤 퀘스트 5>를 원작으로 해도, 초-중반부의 전개가 너무나도 2시간이 안 되는 러닝타임 치고는 빠르게 전개했던 것은, 사실 결국 어찌되었든 이 작품이 (실제 현실이든, 작중이든) ‘게임’이라는 점을 간과하지 않았다는 부분이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최종 보스가 주인공에게 묻는 질문은 어떤 의미에서는 왜 일본인이 ‘드래곤 퀘스트’를 오랫동안 즐겨 했는지를 묻는 질문과도 같은 것입니다. 어찌보면 뻔하고, 지금 다시 보면 1990년대 중반에 나온 드래곤 퀘스트 5는 구태의연한 요소도 있고, 슈퍼 패미콤으로 나온 처음 나온 이래 엄청나게 리메이크를 거치며 일본인이라면 대략적인 스토리조차도 모르는 사람은 적을 겁니다. 그런데도 왜 지금 다시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를 즐기느냐에 대해, 작품은 주인공의 입을 빌어 일종의 메타적 접근을 시도합니다. 그리고 그 답변은 어떤 의미에선 드래곤 퀘스트가 일본인에게 단순한 게임 시리즈를 넘어 어린 시절부터 즐겨온 ‘일상적 문화’가 되었음을 증명하는 것이고요. 어찌보면 이러한 시도가 일본에서 평가를 많이 낮춘 이유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오랜 시간 애니메이션화가 되지 않는 마당에, 명작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받는 5편을 기껏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더니 쓸데없는 ‘사족’을 왜 붙이나는 것이죠. 그 실망감을 이해하는 것과는 별개로 작품은 어떤 의미로는 <레디 플레이어 원> 같은 시리즈를 일본적으로 변용한 시도를 나름대로 한 셈입니다.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이 ‘게임의 근본적인 재미’로 게임에 대한 메타적인 이야기 풀어내기를 시도했다면, <유어 스토리>는 아무리 뻔하고 예상가는 이야기라도 일본인에게 있어 게임의 모든 요소들이 하나의 ‘문화’가 된 것을 내세운 것이죠. 그 ‘추억’과 ‘문화’가 남성 이외의 요소를 상정하지 않은 것은 미묘하고, 메타성을 푸는 과정이 더 섬세한 필요가 있다고 느끼지만 몇몇 일본 반응처럼 ‘팬들을 기망한다’는 반응은 지나친 감이 있습니다. 동시에 이미 <도라에몽 스탠 바이 미> 등에서 호평받았던 애니메이션 제작과 연출 능력은 이번 작품에서도 힘을 드러내고, <드래곤 퀘스트 5>를 인상적으로 즐겼던 이라면 좀 더 깊게 빠져들 지점이 많이 있습니다. ‘유어 스토리’라는 부제대로, 드래곤 퀘스트에 어린 시절의 일부를 맡긴 일본인 모두의 ‘경험’을 바탕으로 게임이란 자기 자신에게 무엇이었는지를 묻는 셈입니다. 일본인 외에는 그 ‘추억의 정서’를 이해하기 조금 어렵고, 원전 게임의 남성-가족 중심 속성을 조금은 탈피하려 노력해도 (특히 비앙카) 계속 답습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최근 신작이 발매된, 장수 게임이자 일본의 국민 게임에 바치는 헌사로는 꽤나 의미심장한 결과물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추신. 드래곤 퀘스트 5가 원래 슈퍼 패미콤으로 나왔다 이후 플레이스테이션에 이식되었죠. 덕분에 협력사에 닌텐도와 소니가 동시에 나오는 진풍경이 나옵니다. 추신2. 문득 든 생각이지만 게임의 ‘플레이 역사’를 소재로 삼은 영화로 미국은 <레디 플레이어 원>을, 일본은 <드래곤 퀘스트 : 유어 스토리>를 만들었다면 한국은 무엇을 만들 수 있을지. 물론 족히 80년대부터 자국 게임을 만든 미국/일본과 90년대 초중반이 되야 겨우 오리지널 게임을 만들기 시작한 한국을 정면으로 비교할 수는 없죠. 그러나 이제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으로 커진 게임 시장 크기와는 별개로 한국이 여전히 ‘모든 연령층’이나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게임을 만들지 못한다는 점에서 ‘게임 경험을 소재로한 영화’가 나올 수 있냐는 질문은 그리 사소한 질문은 아닙니다. 어떤 의미로는 한국에 ‘게임 시장’은 있어도, ‘게임 문화’의 형성은 제대로 되지 못한 것을 비추는 단초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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