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이준혁

이준혁

3 years ago

3.5


content

채식주의자

책 ・ 2022

평균 3.7

채식으로의 도피 -'채식주의자를 읽고' 아내는 왜 채식을 했는가? 소설을 다 읽고 나면 결국 답을 알게 되고 만다. 아내는 윤리적인 사람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렇게 볼 수 없다. 아내는 살생에 대한 혐오감으로 채식을 택한 것이 아니다. 고기를 먹어 치우는 가족들의 입에서, 혹은 ‘나’의 회사 상사들 내외의 입에서 아내는 분명 혐오감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 아내는 도대체 왜 채식주의자가 되었나? 채식주의는 일종의 피난처였다. 자신의 폭력성으로부터의.. 그렇다. 아내는 자신에게 내재된 폭력성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윤리적인 채식을 택했다. 윤리적인 채식으로 자신의 비윤리성을 구속했던 것이다. 소설 속에서 유일하게 채식을 택한 아내가 어떻게 폭력적인 사람이냐고 할 수 있겠냐만, 작가는 아내의 속마음을 다 보여주며 친절한 설명을 보탠다. 아내의 아버지가 자신을 문 개를 잔인하게 살생할 때 아내는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개가 거품과 섞인 피를 토해내며 죽어갈 때도, 축 늘어져 영혼이 빠져나간 개의 몸뚱아리를 볼 때도. 그렇게 치면 마을 사람들 모두 개를 먹으며 잔치를 벌이지 않았냐고 할 수 있겠다만, 그 얘기는 곧 나온다. 또한 아내는 꿈을 꾼다. 살생의 꿈. 과연 아내가 죽이는 건지, 죽은 건지는 모르겠으나 채식을 시작하게 된 꿈에서부터 아내는 무엇을 하는가. 고기를 먹는다. 잔인하게 도륙된 고기. 그리고 피웅덩이에 비친 자신의 어색한 얼굴 속에서 자신의 눈이 반짝이는 것을 본다. 그뿐만 아니라 아내가 꾸는 모든 꿈에서 아내는 살생에 대한, 폭력에 대한 어떤 욕구를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내는 자신의 젖가슴을 좋아한다. 그 가슴으로는 아무도 죽일 수 없다고. 하지만 아내는 채식을 하면 할수록 자신의 가슴은 여위어 가고 또한 살생의 욕구도 점점 쌓여가는 거다. 아무도 죽일 수 없는 유일한 가슴마저 작아져 간다는 것은 아내가 살생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최소한의 위안을 얻을 여지마저 사라져 가는 것 아니겠는가? 아내는 결국 살생을 한다. 참고 참던 고기를 입에 넣는다. 장인이, 장모가, 처형이 고기를 권할 때 고기가 싫었던 것이 아니다. 자신의 폭력성의 두려움을 느꼈던 것이다. 채식을 하며 먹지 못했던 생명. 생명이 숨을 거두고 그 싸늘해진 고기를 마침내 입에 머금는 순간을 아내는 얼마나 참아왔겠는가. 작은 동박새를 한 입 배어 물고 나서야 마침내 아내가 웃는다. 처음에 아내가 채식을 하는 이유를 알았을 때는 아내가 이상한 여자인 줄 알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아내는 이야기 속에서 자신의 폭력성을 인지하고 그 잔인함을 유일하게 두려워했다는 점이다. 소설에서 폭력적인 사람은 아내뿐만이 아니다. 아내가 꾸던 사람을 죽이던 꿈. ‘나’도 꾼다. 또한 먹고 싶지 않다는 사람에게 팔을 붙잡고 억지로 먹이려 하며 뺨을 때리는 것은 폭력이 아닌가? 우리가 죽인 생명을 맛있게 맛보라며 육식을 강요하는, 심지어 싫다는 사람에게 물리적인 폭력을 가하며 강요를 한 것이, 그것이 폭력이었다. 혹시 책을 읽던 당신도 왜 고기를 도대체 먹지를 않는지 답답하고 평화로운 가정의 분위기를 망치며 상황을 최악으로 끌고 간 아내가 원망스러웠나? 채식을 하는 아내가 그저 이상하고 미친 사람처럼 보였나? 당신마저 자신의 폭력성을 발견하지 못했다. 자신의 폭력성이 두려워 채식으로라도 그 잔인함을 억제하려는 아내의 모습을 보면서도 당신은 당신 속에 내재된 폭력성을 보지 못한 것이다. 결국 당신도 고기를 맛있게 먹고 있지 않은가? 우리 모두, 속에 폭력성이 내재되어 있다. 생명을 죽이고 그 맛을 본다는 것에 어떤 감흥도 느끼지 못한다. 당신은 길을 가던 고양이의 목을 조르는 꿈을 꾸던 아내의 정신세계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나? 그럼 돼지의 목숨을 빼앗고 그 살을 잘근잘근, 내장마저 빼먹는 당신은? 아까 말했던 개를 죽여놓고 잔치를 벌인다는 마을이 도대체 뭐하는 짓인지 의문이 들지 않았던 것인가? 이래도 아내가 이야기 속에서 가장 잔인하고 이상한 미친년인가? 살생이 싫어, 개를 죽이고 먹는 것에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한 게 두려워 자신의 손목까지 그어가며 그 욕구를 억누르던 그 여자가? 작가는 이런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우리 왜 이렇게 폭력적이지?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어느 무언가의 생명을 앗아 그 맛을 보는 것에 길들여진 걸까? 책을 읽는 우리는 왜 아내가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사실 아내가 가장 정상인데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