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혜윤

아빠의 아빠가 됐다
평균 3.9
2021년 10월 22일에 봄
청년의 ‘자립’은 단순히 경제와 주거의 독립 정도로 환원할 수 없다. 지금 여기에서, 구체적인 미래의 돌봄 문제를 중심으로 ‘자립’을 재구성해야 한다. 현재 청년들의 라이프스타일은 1인의 자율적 삶을 전제로 하는 탓에 돌봄 문제와 충돌하는 듯 보인다. 돌봄은 현재를 즐길 시간이나 여유를 빼앗아간다.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보다 눈앞에 벌어지는 일들을 처리해야 할 수도 있고, 누군가를 돌보느라 일과 삶의 균형은 꿈도 못 꾸게 될지도 모른다. P.91 ‘정말 아빠만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이 마음 한 구석에 고여 있었다. 아빠를 타박하면서도 아빠를 이렇게 만든 사회적 조건을 무시할 수 없었다. P.99 지역의 다양한 활동과 자원을 ‘소유’하고 있는 양 말하던 사람이 ‘뭐씩이나’ 되지도 않는 할머니를 3명이나 떠맡는다고 성을 냈다. 단체 정관에서 함께하겠다고 선언한 ‘사회적 약자’는 좋은 일 하는 단체 대표의 명예를 위해 쓰이고 버려지는 무엇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계속 반찬을 받고 빵을 얻는다. 반찬이나 빵을 더는 받지 않아도 된다거나 세상에 주체로 나서는 일은 좀처럼 벌어지지 않았다. 이 활동을 지속할수록 선의와 가치를 자원 삼아 군림할 수 있는 사람만 이득을 본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발상이었다. 그동안 나를 괴롭힌 거짓말과 허상이 잘려 나간 기억과 기억 사이를 이으려는 노력이었다니. 언제 겪은 기억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이제 아빠의 말 속에 흐르는 아빠라는 의지를 나도 느끼게 됐다. 이제는 아버지가 기억을 떠올리지 못하는 바로 그 지점에서 같이 뛰노는 방법으로 소통했다. P.169 8년 전 아버지와 나는 ‘다시’ 만났다. 아주 잠깐 지나가는 위임인 줄 알고 떠맡은 일이 전권이 돼버렸다…아버지와 나는 부모와 자식이 아니라 시민과 시민으로 관계 맺으려 한다. 내가 아버지를 돌보는 가장 큰 이유는 아버지가 사회적이고 신체적인 약자이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내가 가족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가족 관계 증명서’가 있듯이, 아버지와 나의 돌봄 기간을 증명하는 ‘시민 관계 증명서’가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