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건엽

비밀의 취향
평균 4.0
각 장에서 내 관심을 끌었던 주제들에 대한 노트 1. 폴레모스; 전장이라는 의미 "진리의 장소는 장 바깥에 존재하지 않습니다."라는 데리다의 말은 텍스트-바깥은 없다와 '함께할 수 없는 걸 요구하는 원본 텍스트'(마르크스의 유령들)라는 구절들을 떠올리게 한다. 번역이라는 모티브는 굉장히 중요하다. 번역은 원본 텍스트가 요구하는 함께할 수 없는 요구들을 끄집어 내는 행위들인데, 이 과정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원본 텍스트 안에 이미 역사적 다수성과 이질성이 새겨져 있다는 사실. 2. 정의; 정의는 마르크스의 유령들의 1장에서도, 그리고 이 책의 6장에서도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내용이다. 정의는 법 권리와 다르다. 정의는 존재하는 것 너머의 약속의 질서이다. 그래서 그는 정의는 법 권리를 초과, 지연, 과잉헌다고 말한다. 그렇게 때문에 도달이 불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도달 불가가 되책감을 가지지 않는 것과 연결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정의를 향한 위급한 강제와 임박함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에 응답해야 한다. 3. 누구와 무엇; 나는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으로서의 코기토와 나는 누구인가의 답변으로서의 코기토는 다르다. 무엇의 문제보다 누구의 문제가 나의 관심을 끈다. 나는 생각하는 '무엇'이다. 하지만 나를 누군가로 만드는 것은 생각한다는 그 단순한 사실이 아닌, 내가 생각에 무엇을 기입하고 서명하는지이다.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며 데리다의 다른 책 용서하다가 떠올랐는데, 그 책에서 용서에서 중요한 질문의 주제 중 하나는 무엇을 용서해야 하는가?그리고 누구를, 누가 용서해야 하는가?이다. 이 두 물음의 핵심 골자는 무엇을, 그리고 누구를이다. 그렇다면 이 둘은 어떻게 다를까? 이런 의문들이 들었다. 그리고 '새로이'라는 포현이 새로움과 반복을 함축한다는 게 인상적. 4. 내가 전유할 수 없는 것에 노출되기, 신 없는 라이프니츠주의; 라이프니츠가 얘기한 모나드론을 데리더식으로 독해하는 게 인상적이다. 모나드끼리의 소통불가능성과 서로를 비추는 모나드라는 두 특성을 각각 통약 불가능과 번역 불가능으로 이해한다. 예를 들어, A와 B라는 다른 모나드가 있을 때 이 둘은 서로 소통할 수 없다. 이는 이 둘을 제외한 제3의 기준을 세워 계산하고 미리 모든 것을 구축하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뜻한다. 모나드는 서로를 비추는데, (내가 이해한 방식으로는 모나드 안의 소우주? 같은 느낌으러) 이때의 비춤은 번역과 유사하게 이해되어서 완벽한 비춤과 완벽한 모방은 불가능하다는 걸 보여준다. 라이프니츠의 모나드론을 자기만의 독해를 통해 전혀 다른 결론으로 끝맺었다는 게 인상적이다. 고유명의 문제; 고유명을 부르는 것은 되풀이 가능성을 전제한다. 번역 불가능성과 연관되기도 하고. 특히 동일한 것이 다르게 지시된다는 표현에서 어쩌면 용서란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지 생각해봤다. 5. 증언; 증언의 목적은 알게끔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타자가 알고 있다는 것을 전제하더라도 행해야 하는 것이다. 증언이라는 것은 두가지를 전제하는데, 첫번째는 누구든 나의 자리에 있었다면 나와 같은 것을 보았을 것이라는 사실이고, 두번째는 그 진술을 무한정 반복할 준비가 되었다는 것이다. 근데 범례와 도덕법칙 내용은 잘 이해못했다... 6. 정당화에 대한 논의가 펼쳐진다. 정의와 정당화 그리고 올곧음. 특히 올곧음은 내가 요즘 제일 관심이 있는 주제이다. 곧다라는 특성과 곧이라는 시간적 긴박감 사이의 관계가 어떻게 정의로 연결되는지도 너무 흥미롭고, 올곧음이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좌절되었을 때 어떻게 용서받을 수 있는지가 내 최대 관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