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CINE 102

CINE 102

3 years ago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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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부터 7시까지 클레오

영화 ・ 1962

평균 3.8

불안의 안개 속에서도 일상의 빛을 조명 삼아 춤을 출 수 있다면. 모든 생명은 죽는다. 죽음이 있기에 살아-있음이 이렇게 밝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클레오가 처음 자신의 죽음을 인식하는 순간 불안이 찾아온다. 그리고 그녀는 가발과 거울을 내려놓고 세상을 응시한다. 그녀가 바라본 도시는 시끄럽고 생동감이 넘치는 동시에 고단함과 죽음(추함)이 가득하다. 클레오는 정처 없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지만 불안한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죽음의 특성은 영화에서 비유적으로 소개된다. 8시면 떠나야 하는 군인은 죽음의 '필연성'을, 예기치 못하게 만나는 의사는 죽음의 '편재성'을 보여준다. 클레오는 죽음을 인식하면서 성장했다. 그런데 그녀는 "죽음을 기억하라(메멘토 모리)"는 옛 격언에 얼마나 충실해야 하는 걸까. 영화 속에는 선글라스를 벗어던지는 이야기의 영화가 삽입되어 있다. 이 선글라스는 외적 아름다움에 대한 숭배와 죽음에 대한 불안 두 가지 모두라고 나는 생각한다. 죽음을 인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에 메여 있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왜냐하면 죽음은 우리가 조정할 수 있는 변수가 아닌 상수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죽음의 선글라스를 계속 쓰고 있을 필요는 없다. 영화는 제목과 다르게 6시 반까지의 클레오만 보여준다. 그렇다면 6시 반에서 7시 사이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가 중요하다. 감독은 일상성과 순수성을 예찬한다. 클레오가 그녀의 동성 친구, 군인과 시간을 보내는 것은 모두 이것과 연관되어 있다. 그들과 대화를 나눌 때 그녀의 불안은 사라져 간다. 특히 남자는 클레오처럼 죽음을 인식하는 사람이다. 7시가 클레오의 죽음을 상징하는 시간이고, 남자의 떠나는 시간이 8시라면 둘은 영원한 사랑을 만난 것이 아닐까. 내일 죽음이 찾아온다고 하더라도 내 옆의 사람들과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을 수 있다면 그것은 행복한 인생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