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재권
3.0

92 흑장미 대 흑장미
영화 ・ 1992
평균 3.0
뻔뻔하고 천연덕스럽게 이렇게 되는 대로 만들어도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 이야기가 아무렇게나 흘러간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게 느껴진다. 사건이 있고 사건이 향하는 방향도 있지만, 영화 안의 모두가 그쪽으로 향하는 일에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인다. 이어지는 상황 속에서 어떻게 하면 더 웃길 수 있을까, 그것만을 생각하는 것 같다. 서커스 천막에 들어가는 순간부터(들어가본 적은 없지만)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마음가짐이나 태도가 조금은 달라지는 것처럼, 영화가 시작되면 그게 어떤 세계든 그 세계 안으로 몰입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영화는 몰입된 세계가 상당히 이상하다. 등장하는 인물들도, 일어나는 상황들도, 연극보다 더 과장되고 희극적이다. 딛고 있는 땅이 엄청나게 뜨겁기라도 한 것처럼 모두가 호들갑을 떤다.(이것은 유진위라는 감독의 특징일 수도 있고, 당시의 홍콩영화 대부분이 그런 분위기를 지향했을 수도 있다. 이유야 어쨌든 정말 산만하다) 놀랍게도 이 영화는 12회 홍콩금상장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당시의 수상기준에 대해서는 하나도 알 수 없지만,(찾을 수 있는 자료가 없었다) 내 생각에는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영화를 영화가 될 수 있게 만든 덕분이 아닐까 한다. 이렇게 이상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은 천연덕스럽게 연기를 이어나갔고, 그 덕분에 영화의 내용만이 아니라 영화 전체를 두고 이상하다고 말할 수가 있으니까. 웃기는 것만을 목적으로 영화를 만들 때, 웃기는데에 성공한다면 모든 것이 괜찮아진다. 그런데 이번 영화는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나를 웃겨주지는 못했다.(보는 도중에 두 번이나 잠들었다. 재미 없어서 잠든 건지도 모르고 잠이 와서 재미 없게 느껴진 건지도 모른다) 내가 좋아하는 유진위의 다른 영화들과 스타일에서는 비슷하지만, 뭔가가 부족한 느낌이었다.(주성치가 없어서 그런 건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느낀점은 있다. 이렇게 아무렇게나 만든 것 같은 영화도 만들 수 있다는 것. 창작이라는 것을 할 때에는 대개 수용자까지 생각하게 마련이고, 수용자를 고려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검열하게 된다. 그것은 창작의 과정에서(수용자와 나누고 싶은 창작물이라면) 반드시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검열은 가끔씩은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하게 만들고, 미리부터 상상력의 한계를 정해버리기도 한다. 무난한 선택들로만 이루어진 결과물은 결국 뻔하고 평범하고 재미없는 것이 된다. 반드시. 이걸 이런 식으로 해도 될까? 이상하게 보이지는 않을까? 너무 극단적인 것이 아닐까? 그런 의문이 들때, 앞으로는 종종 이 영화를 떠올리게 될 것 같다. 그러면 유진위 감독의 고집스러움과 뻔뻔함은, 에이, 그 정도는 괜찮아, 걱정하지 말고 마음껏 해, 하고 말해주겠지. 어느 인터뷰에서 유진위 감독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라고 말했었다. 나는 그 말을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