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지윤
5.0

아스달 연대기
시리즈 ・ 2019
평균 2.9
넷플릭스로 한글자막 켜서 봤다. 자막의 장벽을 넘으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접할 수 있단 명언을 한국드라마에도 적용한다면 이 작품이 될 것이다. 주변에서 망작망작해서 미리 거르지 말고 5화까지 찍먹해보고 망작인지 자신한테는 걸작인지 판단하도록 하자. 나는 유투브에서 탄야의 별방울 춤 클립만 한 번 본 경험이 있는 완전 머글인 상태에서 우연히 넷플릭스에서 이걸 보기 시작했다. 1화 뇌안탈 언어, 장발, 머리장식, 갑주, 파란피, 겨울 파카 같은 모피 재질 등등. 고증으로 걸고 넘어지려면 한참 걸고 넘어져도 모자를 정도란거 인정한다. 그런데 생업에서 큰 프로젝트를 하나 끝내고 머리를 백지화 한 다음에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좋은 점이 여기서 발동한다. 아무 생각이 안 들고 그냥 영상 재생바를 따라 쭉 따라가는 너그러운 시청자가 된다는 점이다. 나는 이렇게 1화에서부터 빠져버렸다. 아사혼 역의 추자현의 연기는 언젠가 뉴스에서나 댓글에서나 어색하다는 말이 나온 것으로 기억한데, 웬걸, 내 눈에는 진짜 호소력이 짙었다. 특히 남쪽으로 목숨걸고 데려온 자기 아들이 자신을 이용해 써먹으려고 하는 신 놈인 것을 알고 좌절, 오열, 그럼에도 최후의 말을 내뱉을 때. 그때 진짜 좋았다. 아사혼의 역할이 정말 중요했다. 두 쌍둥이의 어머니인 것을 떠나서, 정말로 이야기의 시발점이기 때문에 아사혼의 스토리와, 뇌안탈족에 대한 그녀의 감정과 스탠스 등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 뒤 이야기도 별로가 될 것이다. 하지만 1화에서부터 그녀와 모자이야기에 감겨들었다면 장담하건데 18화까지 쉬지 않고 달리게 될 것이다. 아무튼 두 번째로는, 개인적으로 얼굴이 부담스럽다고 느끼는 장동건의 존재감이었다. 꽤, 잘 어울렸다. 한국판 존스타크 헤어스탈과 의상에. 아참, 여기서 밝히는데. 이 드라마가 왕좌의 게임을 표절했다고 많은 비판과 뭇매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의상이나 배경이나 뇌안탈족 컨셉을 보면 상당 부분 유사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고 본다. 대흑벽도 그렇고. 그런데 나는 이런 가치관을 취하고 있다. 좀 베끼면 어떤가? 하고, 니르하를 향한 경례는 나비족의 아이씨유 인사법을 닮았고, 해족의 옷차림은 완전 트로이 전쟁 때 헬레리즘 의상이고, 김옥빈은 나올 때마다 시상식 드레스 풍 의상을 입고 나온다. 엄연히 배경은 청동기인데. 게다가 송중기의 2인역인 사야는 여인으로 분장할 때 서양식 로브에다가 레이스를 치렁치렁하게 달고 나온다. 청동기 시대부터 벌써 보빈을 꼬아서 실크레이스를 짠 건가? 아닐 것이다. 물론 역사학자, 고고학자, 건축학자가 보면 입에 거품을 물고 흥분하며 비판의 말을 쏟아낼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각적으로, 그리고 영상미적으로 가볍게 즐기기에는 뭐, 나쁘지 않았다. 괜찮았다. 왕좌의 게임이 생각나긴 하지만 잠시 스쳐지나갈 뿐이다. 나는 오히려, 양판소 중 성녀 물을 더 많이 떠올렸다. 탄야가 백성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예로 부려먹어지는 아이들을 찾아서 신을 신기고 밥을 먹이며 봉사하는 일종의 에피소드에서 그런 기분을 받은 것이다. 게다가, 부족, 씨족에 대한 묘사는 아메리칸 인디안의 문화를 많이 참고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와한족은 대놓고 미국의 이로쿼이 족을 연상시킨다. 모계사회이고, 공동의 재산을 공평하게 분배하며, 민주적인 절차로 의사결정을 내린다. 또한 한국적 샤머니즘도 느꼈다. 때깔은 서구식이었지만, 와한의 씨족 어머니가 탄야를 수련시키는 과정에서 한국 무속의 신어머니와 신딸 모티브를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이런 것들은 전세계 샤머니즘에서 만연한 보편적인 속성이기도 하다. 아무튼, 색안경을 끼지 않고 드라마를 천천히 음미하며 따라가다보면 작가가 꽤 영리하게 극본을 썼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방법이 어떻게 되었든, 자신이 하고자하는 이야기가 분명했다. 장동건과 김옥빈의 끈끈한 애정서사는 폭풍의 언덕의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처럼 격정적이면서도 놓을 듯, 놓을 수 없을 듯 하는 텐션이 있어서 극에 탄력감을 줬고. 미홀과 그의 딸 사이의 애증 서사는 물론 서르세이와 라니스터 관계가 떠올랐지만, 아버지의 야망을 위해 딸을 노리개처럼 쓰는 것은 클리셰처럼 여러 작품에서도 다분한 인물간 관계지 않나. 킹덤의 조가네 부녀 사이도 그런 관계였고. 암살에서 이경영과 전지현 사이도 그러했고, 아무튼 찾아보면 아버지의 야망을 위해 딸이 희생하는 구조는 흔하디 흔하다. 하지만 김옥빈이 연기한 태알하는 장담하건데, 전무후무한 여성 캐릭터였다. 서르세이와 비교할 수 없다. 걘 동생이랑 근친해서 애를 줄줄이 낳은 처음부터 도덕이란 건 1도 없는 캐릭터였다면, 태알하가 사랑한 타곤은 그의 아버지와도 잠도 자는 사이긴 하지만, 엄연히 태알하와는 남남이다. 태알하는 색, 계의 탕웨이와 좀 더 닮았다고 개인적으로 말하고 싶다. 둘 다 남자들의 야욕에 희생당한 여성스파이지만, 사로잡아야 하는 상대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태알하와 타곤의 감정서사는, 때로는 폭풍의 언덕 같고, 때로는 이대로 이어지지 못하고 쫑나야 할 것 같은 갈 데 까지 다 간 관계 같기도 하고, 또 어느 때는 첫사랑처럼 풋풋하기도 하다. 매력이 다양해서 그만큼 흥미롭게 다가왔나보다. 은섬의 캐릭터는 개인적으로 심심했다. 구르고 굴러도 팔 다리 하나 절단 안 되고 멀쩡히 살아오는 것보면 주인공 버프 거나하게 받아서 어지간하면 안 죽고 살겠지 해서 긴장감이 떨어졌다. 유명한 말 짤이 어디서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약한 사내로다 ㅋㅋㅋ 오히려 타냐와 사야 관계가 흥미로워서, 그 부분만 먼저 보려고 계속 뛰어넘기 할 정도였다. 사야란 캐릭터는 조프리처럼 잔인하면서도 티리온 라니스터처럼 눈치를 보면서도 탄야를 시시각각 의심하는 관심병자다. 이렇게 은은하게 돈 캐릭터 너무 좋다. 맛있다. 그래서 아스달에서 탄야가 안 운 날이 없을 정도로 우울하고 표정에 먹구름이 꼈지만, 사야와 붙어 놓으니 너무 꿀잼이라서 너무 맛있었다… 개인적으로는 18화 끝나기 전에 사야가 탄야 팔 붙잡고 “지금 네가 보고 있는 얼굴이, 나야 그새끼야. 똑바로 정해 아니면 네 사람들 목 다 쳐버릴 테니까.” 했으면 허파 뒤집어져서 시즌 2 캔슬 된 거 보고 눈물 찔찔 흘리면서 베갯닢을 적셨을 텐데. 장동건 대관식 한다고 비중을 다 줘놔서, 안타깝게도 그런 맛있는 부분은 없었다. 아무튼 송중기가 연기하는 사야 부분만 돌려봐도 충분할 정도로 이 드라마는 재밌다. 당신의 시간을 할애할 가치가 충분히 된다. 특히 복종관계를 입력시키기 위해 손에다가 얼굴을 갖다 붙이게 하는 그 포즈… 아주 작가님이 배우신 분이다. 정말 감탄에 감탄을 했다. 휴…. 심장이 애려와서 붙들고 2회차 하러 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