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JE

JE

4 years ago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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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

영화 ・ 1988

평균 3.6

전기 영화라고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구조가 복잡하다. 플래시백 속에서 다시 플래시백으로 이어지고, 별다른 표식도 없이 넘나드는 통에 시간대가 마구 섞이는 듯하다. 혼란하면서도 분방한 이런 구성이 마치 즉흥적인 재즈를 닮았다고도 할 수 있을까. 재즈를 모르다 보니 그보다는, 영화가 찰리의 삶을 그린다거나 따라간다기보다 흡사 과거로 점철된 시간 속에서만 찰리를 새기는 것처럼 느껴진다. 특히 찰리 파커라는 거대한 명성이 무색할 정도로 영광의 서사를 좀체 누리기가 어려운데,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기억에 남는 건 아무래도 찰리 파커의 연주다. 내내 어둡고 어두운 와중에 단 하나 빛나는 요소, 찰리 파커의 연주, 색소폰 선율. <버드>는 확실히 다른 무엇보다도 찰리 파커의 음악을 위한 (이스트우드의 덕질)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찰리 파커에 대해서도, 재즈에 대해서도 문외한인 입장으로선, 연주보다도 더 기억에 남는 이미지들이 있다. 비오는 어두운 밤과 찰리 파커의 땀과 눈물. 영화 대부분이 밤 장면인데다, 오프닝에서도 엔딩에서도 창밖엔 비가 내리고 찰리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다. 극단적인 어둠이 깔린 영화의 숱한 순간에서 찰리는 땀을 흘리거나 눈물을 흘린다. 음악에 대한 열정, 마약 중독으로 인한 고통, 후회, 챈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 삶의 회한 등 순간의 이유야 저마다겠지만, 결국 찰리를 화려한 예술가보단 처절하고 불안정한 존재로 더 부각한다. 이에 <버드>를 어떤 밤의 영화이자 눈물과 땀의 영화라 부르고 싶을 정도인데, 거센 비와 찰리가 쥔 술, 또 이리저리 넘나드는 시간의 흐름, 예술가-중독자 찰리에 대한 양가적인 기운, 재즈의 즉흥성, bird라는 별명이 주는 자유로운 비행의 인상 따위를 모조리 더해 아예 유동성의 영화라고도 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참 좋았던 장면도 비슷한 감상의 연장이다. 챈과 찰리가 처음 만난 날 함께 어두운 밤 거리를 걸으며 재즈 이야기를 하던 장면. 애증의 갈등을 겪게 되는 챈과의 풋풋한 만남이기도 하지만, 렌즈 플레어로 인해 (여전히 밤 장면이지만) 해가 환히 비치는 듯한 느낌이 일순 조성되며 찰리의 환한 미소까지 화면에 남는다. 영화의 무드를 물리치는 빛과 웃음이자, 찰리에 대한 유동적인 평가마저 뒤로 물리는 숏 같았다. 딱 그 순간만큼은 다른 어떤 실존적인 흔들림 없이 굳건한 아름다움이 머무른다. 사실 <버드>를 보면서 찰리 파커의 삶이 어떻게 피었다가 졌는지를 온전히 감상하는 건 어려울지 모른다. 그런 점에서 언뜻 (거의 30년은 뒤에나 나온) <제이. 에드가>와 비슷한 느낌이기도 하나, <버드>는 찰리(와 챈)에 대한 경의가 좀 더 느껴지긴 한다. 전기 영화가 어때야 한다는 건 없을 테지만, 만약 <버드>를 훌륭한 전기 영화라 말할 수 있다면 그건 영화의 태도 덕택일 것 같다. 단순히 찰리 파커의 굴곡이나 이야기를 담기보단 아름다운 연주와 위태로운 실존처럼 양가적이지만 그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를 그 자체로 감각케 하려는 태도. 재즈를 잘은 모르지만, 이해보다 감각이라는 듯한 태도야말로 재즈의 삶을 살아온 찰리 파커에게 어울리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