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INO
5.0

바빌론
영화 ・ 2022
평균 4.0
지독히 끝없는 밑바닥.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영화를 사랑하는 이유. -영화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보여주는 영화. 그 모든 순간이 아름답지 않을지라도 우연이 마주쳐 만들어내는 환상적인 한순간을 위해 끝없이 달리는 여정을 보여준다. 계속해서 변화하는 환경에 휩쓸리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인상 깊다. 올라가는 길은 우연과 행운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내려오는 길은 처절하고 가파르다.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는 누군가는 도태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영화는 영원히 기록된다. 그들의 찬란한 시대가 사라져도 영원히 빛나는 모습으로. 그렇게 누군가에게 다시 친구로 다가가며. 어떻게 보면 끔찍하기도, 아름답기도 한 이 아이러니함. 영화에 대한 사랑을 고하는 바빌론을 보며 내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 자체를 즐기던 초반과 달리, 많은 영화를 보게 되면서 예술성과 작품성으로 평가하는 나에게 잭 콘래드의 대사가 꽂혔다. 영화는 단순히 오락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는 것. 누군가에게는 영화가 세상과의 통로일 수도 있다는 것. 영화관에서 일을 하다 보니 생각보다 더 다양한 사람들이 영화를 보러 온다는 것을 느낀다. 물론 지금은 티켓값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오르긴 했지만, 영화가 접근성에 있어 어떤 소외도 없이 평등하게 즐길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또한 해변에서의 잭의 눈빛으로 소위 말하는 망할 것 같은 영화 뒤편에도 수많은 사람이 있고 그 자체로 어떤 의미가 있다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언제나 성공한 영화만 존재할 수는 없다. 실패하고 도전하면서 또 새로운 것들이 탄생하는 거지. 영화를 보기 전, 후로 많은 불호평을 보기도 했다. 불호 포인트가 어떤 의미인지 다 이해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영화가 참 좋다. 과몰입을 멈출 수 없어.. OST 들으며 내적 댄스를 추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 티켓값이 오르고 블록버스터가 아닌 영화들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가 박해지면서 점차 영화 산업의 시대도 저물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요즘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영화를 사랑하고 놓을 수 없는 사람들도 많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영원히 함께 빛나주었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망할 놈아 망하지마.. + 넬리를 본 순간 사랑에 빠져버린 매니처럼, 이 영화를 보고 어떻게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반짝반짝 빛나 모두의 눈길을 사로잡던 넬리가 도박에 빠지고 약에 쩔어 제정신이 아닌 모습을 보여도 그 사랑을 놓을 수가 없는 거다. 그 모든 경험을 거쳐봐도 결국은 내가 영화를 놓을 수 없는 것처럼. ⠀ “그래도 한바탕 잘 살지 않았나, 나?”, “인생 정말 아름답지”라는 넬리와 잭의 마지막 대사, 그리고 그들의 작은 춤사위를 잊을 수 없다. 후련한 듯 살랑이는 몸짓이 오히려 더 슬프게 다가왔다. 한동안 그토록 사랑했던 영화를 멀리하던 매니가 다시 영화를 보면서 자신은 영화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는 장면 또한 완벽한 시퀀스. 영화관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을 비추는 장면은 내가 영화관에서 많은 사람들과 영화를 봄으로써 완성되었다. 웃고, 울고, 졸고. 영화를 보고 좋았든, 별로였든 그 공간에 관객이 있음으로써 완성되는 영화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던 시간. ⠀ 그리고 엔딩씬은 진짜 몇 번을 봐도 너무 좋다. 그 영화들의 완성도와 작품성을 떠나 영화사에 미친 영향을 곱씹어보게 하는 그런 장면. 요즘 들어서 느끼는 건데 내 취향이든 아니든 일단 보는 게 최고라는 것. 까도 보고 까.. 꼭 한구석씩은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기도 하고 별로였어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더라. 그니까 그것도 결국은 또 어떤 경험이 된다. 똑같은 영화를 보고 각자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도 영화의 참 매력적인 부분이다. ⠀ 아무튼! 이 영화 과하다. 진짜 과하고 완벽하진 않은 것 같지만 그냥 이런 생각들을 하게 만들고 마법처럼 또 다시 사랑에 빠지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나는 그냥 5점! ⠀ “그래도 사랑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