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Ordet

Ordet

2 years ago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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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1986

평균 3.5

2023년 12월 10일에 봄

(이 글은 제가 연재하고 있는 ‘빛결의 영화 이야기’에서 퍼왔어요. 현재 117개의 글을 올렸고 매주 업데이트되고 있는데 관심 있으시면 아래 주소로 방문해주세요. ^^) https://m.blog.naver.com/kimuchangmovie/223296960034 천승세의 중편 소설인 ‘낙월도’를 원작으로 한 하명중 감독의 <태>(1986)는 5공 정권 시절 검열 문제로 인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불운의 영화다. 다행히 개봉을 했었으나 관객들의 무관심 속에 금새 극장에서 종영되었기 때문에 국내에서 이 영화를 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 최근에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이 영화를 4K 디지털로 복원했고 상영회를 가졌었는데 이 영화를 본 박찬욱 감독은 ‘80년대 한국영화사를 다시 쓸 작품’이라며 극찬했고 박찬욱, 정윤철, 이준익, 정지영 감독의 주최로 지난 12월 11일에 또 한 번의 상영회가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5공 정권에 대한 저항 정신을 보여주는 <태>는 한국영화의 저력을 보여주는 작품임에 틀림없으며 4K 복원을 계기로 반드시 국내 영화팬들에게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널리 알려져서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 마땅하다. 하길종의 <바보들의 행진>(1975), 임권택의 <만다라>(1981), <길소뜸>(1985), <서편제>(1993), <천년학>(2006), 배창호의 <황진이>(1986), 김기영의 <이어도>(1977), 이두용의 <최후의 증인>(1980) 등 한국영화사에 남는 걸작들을 촬영한 정일성 촬영감독의 영상미가 압권이며 국악으로만 편성한 김영동 음악감독의 음악 또한 큰 감흥을 선사한다. 젊은 시절의 이혜숙 배우의 열연도 인상적이다. 일제 강점기 육지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낙월도를 배경으로 섬 마을 주민들을 속이고 경제권을 독식한 최부자로 대표되는 기득권 세력이 마을 주민들을 착취하고 폭압적으로 지배한다. 착취의 구조에 저항할 경우에는 죽이는 일도 서슴치 않는다. 마을 사람들은 희망이 없는 섬을 탈출하고자 하나 아무도 탈출에 성공하지 못한다. 그러나 민초들의 생명력은 질기고 질기므로 마침내 섬에는 희망이 도래하기 시작한다. <태>의 오프닝은 이 영화를 잘 함축하고 있다. 평온해보이는 갯벌을 배경으로 수많은 여성들이 노동을 하는 모습이 롱 숏으로 보인다. 그런데 다음 숏에서 갑자기 한 여성이 배를 잡고 고꾸라진다. 이 여성은 비명 소리를 지르는데 다른 여성들이 처음에는 이 소리를 듣지 못한다. 이윽고 쓰러진 여성의 비명 소리에 놀란 여성들이 급하게 쓰러진 여성에게로 뛰어가지만 이미 그녀는 숨을 거둔 뒤이다. 여성이 죽었다는 것이 확인되는 순간 이 여성의 죽음을 위무하듯이 구슬픈 음악이 울려퍼지기 시작하고 다음 숏으로 넘어가면 죽은 여성의 시신을 힘겹게 끌면서 귀가하고 있는 여성들이 익스트림 롱 숏으로 보인다. 이 오프닝은 히치콕적인 서스펜스와 유사하게 긴장감을 창출한다. 평온해보이는 풍경에서 갑자기 한 여성이 쓰러짐으로써 분위기가 반전되고 관객들에게 궁금증을 유발시키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관객은 평화로워 보이는 이 섬이 사실은 겉보기와는 다르게 불안함을 내재하고 있다는 것을 금새 눈치챌 수 있게 된다. 단 몇 쇼트만에 하명중 감독은 폭압적인 세력에 의해 고통받고 있는 민중의 모습을 시적 은유을 통해 탁월하게 표현해낸다. <태>는 기본적으로 정치적 우화라고 할 수 있다. 하명중 감독이 실제로 밝혔듯이 이 영화는 80년대 암울했던 5공 정권의 정치적 현실을 은유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을 속여서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최 부자 일당은 80년대 당시 군사정권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영화의 이야기는 풍어제를 지내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 이 풍어제는 사실 마을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풍어제를 지내는 날은 이 섬의 중심 인물이었던 문선주의 기일이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이 섬은 문선주가 살아있었을 당시에는 평화로웠던 곳으로 묘사된다. 따라서 문선주의 기일에 개최되는 풍어제는 문선주가 죽은 이후에 마을 사람들로부터 그 인물에 대한 기억을 없애려는 연막 장치에 불과한 것이다. 이것은 5공 정권 시절에 수없이 행해졌던 ‘눈 가리기’식 정책을 상기시킨다. 독재 정권에 반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국민들의 관심을 정치가 아닌 다른 곳으로 쏠리게 하고 국민들로 하여금 그것이 더 중요한 사안 인냥 믿게 만드는 것이다. 풍어제에 반발하는 월순은 현장에서 바로 죽임을 당하게 되는데 월순은 곧바로 군사정권에 저항하던 민중을 떠오르게 만든다. 풍어제라는 거대한 스펙터클을 통해 마을 사람들이 현혹되는 모습은 당시 국민들을 수동적으로 만들어버렸던 미디어에 대한 비판으로도 읽힌다. 이렇게 <태>는 우화적인 형태로 당시 5공 군사정권의 만행을 격렬하게 비판한다. <태>는 무엇보다도 정일성 촬영감독의 촬영이 압도적이다. 촬영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를 볼 이유는 충분하다고 얘기하고 싶을 정도이다. 이 영화와 정일성이 촬영한 또 다른 ‘섬’ 영화인 <이어도>와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롭다. 두 영화 모두 원초적인 에너지가 흘러넘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영화에서 마치 섬의 시선인 것처럼 찍힌 부감 쇼트들은 허우 샤오시엔의 <비정성시>(1989)와도 유사하다. 또한 섬의 기후 변화를 섬세하게 포착한 장면들은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정사>(1960)를 떠올리게 만든다. 정일성은 단 한 쇼트도 허투루 찍지 않은 상태에서 완벽한 구도 감각으로 섬의 다양한 면모를 포착하면서 섬이 지니고 있는 원초적인 생명력을 오롯이 담아낸다. 귀덕(이혜숙)이 홀로 절규하면서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와 맞서는 듯한 장면에서 귀덕의 얼굴 클로즈업과 바다의 롱 쇼트가 휘몰아치듯이 교차되는 순간이 특히 인상적이다. 바다의 롱 쇼트에 이어서 과거의 행복했던 섬의 시절을 보여주는 몽타쥬가 이어지는데 이 몽타쥬가 끝나면 귀덕이 바다에 뜬 무지개를 보며 감격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시퀀스는 자연과 인간의 대결을 역동적으로 담아낸 한국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태>는 귀덕과 종천(마흥식)의 멜로드라마인 측면이 있다. 귀덕은 과거에 낙월도를 이끌었으나 현재 세상을 떠난 문선주의 딸이며 낙월도의 생명력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종천은 과거에 배를 타고 어업에 종사하는 인물이었으나 현재는 최부자 일당이 배를 탈 기회를 주지 않기 때문에 배를 타지 못하고 배를 수선하는 일을 하면서 연명한다. 귀덕과 종천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이며 귀덕은 종천의 아이를 갖게 된다. 그들은 귀덕의 어머니도 목숨을 끊고 더 이상 섬에 희망이 없다고 느끼며 섬을 탈출하려다가 팥례모가 최부자 일당의 강요로 인해 희생 제물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최부자 일당을 처단하는 핵심 세력이 된다. 종천은 최부자 일당을 처단하는 데 성공하지만 결국 만신인 청백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다. 그러나 귀덕은 낙월도의 희망의 상징이 될 종천의 아이를 출산한다. 이렇게 <태>에서 귀덕과 종천의 멜로드라마는 폭압적인 세력에 맞서는 민중들의 저항을 대표하는 것이며 이 영화의 주축을 담당한다고 볼 수 있다. <태>에는 두 명의 인상적인 캐릭터들인 용문과 팥례가 나온다. 용문은 섬의 행복한 시절을 상징하는 인물인 귀덕의 아버지 문선주를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정신 이상자로 섬을 헤맨다. 팥례는 섬을 탈출하려는 과정에서 아이가 죽고 용문과 마찬가지로 정신 이상자가 되어 섬의 이곳저곳을 옮겨 다닌다. 용문은 이곳저곳 옮겨다니면서 섬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들의 목격자로서 보여지는데 그런 의미에서 섬을 대표하는 화자라고 볼 수 있다. 나중에 밝혀지지만 그는 섬의 비밀을 알고 있는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다. 섬의 증언자로서 용문은 <비정성시>에서 문청(양조위)이 맡은 역할과도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팥례도 영화의 중반부부터 용문과 같은 인물로서 기능한다. 용문과 팥례는 정신 이상자인 탓에 섬에 존재하지만 한편으로는 섬의 질서에 갇혀있는 인물들이 아니다. 그들은 결코 죽지 않고 민초로서의 질긴 생명력을 보여준다. 그렇게 됨으로써 그들은 최부자 일당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된다. 섬의 권력이 최부자 일당에게 집중되고 있다면 이 두 인물은 그 권력의 중심을 무질서한 방식으로 흐트러뜨려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두 명의 무질서한 운동은 그 자체로 권력에 저항하는 몸짓이 되며 결국 권력을 무너뜨리고 만다. 이 운동이 귀덕이 태를 끊는 행위로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영화에서 김영동 음악감독의 뛰어난 음악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임권택 감독의 몇몇 영화들을 제외한다면 국내 영화들 중에 이 작품만큼 국악을 잘 사용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 영화에서의 음악은 감각적으로 사용된 측면이 있다. 물론 계획적으로 배치되어 각 장면에 맞게 음악이 사용되었겠지만 영화를 보는 입장에서 생각해본다면 직관에 의존해서 음악이 사용된 느낌이 강하다. 종천이 최부자 일당이 그동안 마을 사람들을 속여왔다는 것을 깨닫고 분노의 질주를 할 때나 섬의 행복한 순간을 보여줄 때 나오는 음악이 특히 인상적인데 국악 특유의 리듬과 이미지가 어우러져 섬 사람들의 생명력과 함께 한국적인 미학의 진수를 보여준다. 종천이 죽고 시간이 흐른 뒤에 귀덕은 홀로 아이를 출산하기 위해 명바위 옆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그 곳에서 힘겹게 종천의 아이를 출산한다. 이 장면은 하나의 무용을 보는 것처럼 아름답게 연출되어 있다. 이 영화의 오프닝에서 흘러나왔던 음악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카메라가 섬 주변을 돌면서 익스트림 롱 숏으로 아이를 출산하기 위해 긴 흰 천에 매달린 채 고군분투하고 있는 귀덕을 보여준다. 다음 컷에서 좀 더 가까운 거리에서 귀덕을 보여준 뒤 귀덕의 얼굴 클로즈업과 새로운 만신이 섬을 뛰어다니며 춤을 추는 이미지가 교차된다. 그리고 곧 이어 귀덕은 아이를 출산하기에 이른다.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여성들이 귀덕에게로 달려온다. 귀덕은 태를 이빨로 직접 끊은 뒤 아이를 들어올린다. 이 장면은 이 영화의 오프닝과 일종의 수미 상관을 이룬다고 볼 수 있다. 한 무리의 여성들이 어떤 광경을 목격하고 달려오는 모습이 공통적으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런데 오프닝에서 그녀들이 목격하는 것이 죽음이라면 엔딩에서 그녀들이 목격하는 것은 생명의 탄생이다. <태>는 이렇게 죽음에서 시작해서 생명의 탄생으로 끝나는 영화다. 이 두 개의 이미지가 이 영화를 압축하고 있다. 귀덕이 태를 끊는 모습은 이 영화의 저항 정신을 상징한다. 유신 독재 정권에 맞섰던 고 하길종 감독의 저항 정신은 그로부터 5종 군사정권에 맞섰던 그의 동생인 하명중 감독에게로 이어졌고 그들의 저항 정신은 결국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고 민주화를 실현시켰다. 그런 의미에서 <태>는 지금도 유효한 가치를 잃지 않는다. 한국영화사에 길이 남을 영화를 잉태한 <태>의 저항 정신은 앞으로도 우리 곁에 살아 숨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