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신상훈남

신상훈남

2 years ago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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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 죽음의 바다

영화 ・ 2023

평균 3.2

2023년 12월 16일에 봄

<명량>은 '극복'의 영화, <한산>은 '승리'의 영화, 그리고 <노량>은 '독려'의 영화다. 난세의 영웅은 현세의 우리를 구원해준다. '왜 저렇게까지 하는 걸까'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이순신 장군은 '이 정도면 끝낼 만한 지점'에서 한참을 더 지나 정말 끝까지 가려고 한다. 그것은 임금을 향한 충성도, 죽어버린 병사들을 위해서도 아니었다. 이 전쟁을 여기서 끝내지 않으면, 이 전쟁이 여기에서 끝나버린다면 더 큰 원한이 쌓일 것이라는 걸 그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이내 헷갈린다. 부상을 입은 병사들과, 곁을 지켜주던 병사들이 어느샌가 사라진 공허함. 그는 싸우고 싶어서 싸운 게 아니다. '싸워야 해서' 싸운 것이다. <서울의 봄>에서 이태신 장군이 이순신 동상을 보며 마음을 다잡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것이 참 일맥상통하며 시기적절했다. "자네도 고향으로 돌아가는 게 어떤가." "병사들은 알고 있습니다. 고향이란 전쟁이 끝나야만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온전히 전쟁이 끝나면 그리 하겠습니다." <명량>이 '두려움'에 휩싸인 이순신의 이야기였던 것에 이어, <노량>은 그가 '복수심'에 사로잡혀 있다고 관객들을 속이려 하고 있다. 그가 이 전쟁을 놓아주질 않고 끝까지 가려는 이유를 '아들과 동료를 잃은 슬픔'으로부터 비롯되어 있다고 묘사되는 장면이 여럿 나오는데, 아마 조금은 그랬을 것이다. 이순신도 용맹한 장군이기 이전에 격노라는 본성을 드러내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그는 그토록 꿈에서 찾아 헤매던 '아들을 죽인 범인'을 보고도 모른 체한다. '복수심'보다, 사랑하는 자들을 잃은 '슬픔'보다, '나라와 백성을 향한 충'이 몇 배는 더 소중했을 테니. "하나같이 전쟁의 이후만을 바라보는구나." 이 영화는 이전 작품에서 느꼈던 해전의 박진감도, 승패에 있어서의 위기감도, 적과의 대립구도에서의 긴장감도 강조되어있지 않다. 그는 무기 대신 북채를 들어 상처 투성이인 병사들을 독려한다. 그 북소리는 스크린 너머 현세의 수많은 위기들을 헤쳐 나가야 하는 관객들에게 전달됨으로써, 조선을 구했던 난세의 영웅이 현세의 우리를 구하려 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의를 위한 싸움. 그에게 있어 후회란 없었을 것이다. "한산도는 어디인가. 큰 바다 한가운데 한 점 푸르구나. 백 번 싸운 우리 장군님, 한 손으로 하늘 가운데 벽을 붙잡았네." 그는 <명량>에서 기적적으로 일어난 회오리를 두고 천행이라 말하지 않고, 자신을 도우러 온 백성들을 두고 천행이라 말한다. 이순신 장군이 끝까지 싸운 이유는 간단하다. 그가 지키고자 했던 산천에는, 수많은 백성들이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게 전부였다. 그 백성들이 살아남고, 사랑하는 누군가와 결혼을 하여 낳은 아이가, 후에 또 낳은 아이가, 바로 나다. [이 영화의 명장면] 1. 싸우려는 의지 이순신 장군은 자신의 아들 '이면'을 죽인 살인자를 눈앞에 두고도 '이 자는 아니다'고 말하며 지나친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칼을 내려치고 싶었을 것이다. 꿈속에서 그렇게나 괴로워하던 자신의 아들의 목을 벤 자를 보았기에. 하지만 그런다고 변하는 건 없었다. '원한'은 가득하였지만 그가 칼자루를 쥔 것은 그 '원한' 때문이 아니라는 게 드러난 장면. 이순신의 확고하고도 아픔으로부터 초연하려는 의지가 느껴져 대단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타까웠다. "이렇게까지 싸우려는 이유가 뭐요? 파렴치한 임금을 향한 충성 때문에? 아니면 죽은 자들에 대한 복수심 때문에? 모두가 끝났다고 하는 전쟁이야. 심지어 당신네 임금까지도!" 2. 마지막 전투 지독하게 긴 새벽이 지나 마침내 해가 떠오른다. 시간이 많이 흐른 탓에 병사들의 손엔 지혈을 하는 붕대가 있고 이순신의 눈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 하고 있는 그들이 밟힌다. 각자의 삶엔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것이 있을 테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나섰을 것이다. 떠오르는 태양 아래 함께 싸웠던 병사들의 모습도 아른거렸을 것이고, 꿈에서나 봤던 아들 역시 선명하게 보였을 것이다. 이순신 장군은 북을 마구 두들긴다. 그 북에서 나는 소리는 아군에겐 사기가 충천되는 응원이, 적군에겐 지독하게 끝나지 않는 절망이 되었다. 햇빛은 눈이 부셨지만서도 눈을 감고 싶지 않았다. 그의 눈빛엔 많은 것들이 담겨져 있었기에. "너무 힘들어 마십시오. 저도 함께 싸우겠습니다." 그는 밝은 별이 되어 하늘의 벽을 붙잡았다 아직도 헤매고 있는 우리들에게 방향을 알려주며 어려운 곤경에 처한 현대인들에게 독려가 되어준다 덕분에 우린 마냥 깜깜한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아도 된다 전하지 못 한 말이 남았거나 행하지 못 한 일이 있거나 그것들을 받아보고 싶을 뿐이다 "어찌 대낮에 저런 밝은 별이." "둘 중 하나 아니겠는가. 전하지 못 한 말이 아직 남았거나, 행하지 못 한 일이 아직 남았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