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Ys

정오의 총알
평균 4.3
Q : <정오의 총알>의 말하는 이들의 '학교를 그만두고 직장을 그만두고 운동을 그만두고' 컵을 계속 열심히 휘젓는 (<성묘객들은 밝은 옷을 입는다>) 태도가 내내 눈에 들어옵니다. '어떤 낱말이든 너무 꽉 붙들면 안 된다.'(<스노우사파이어>)는 한 줄이 반가운 건 이런 마음에 공감이 가기 때문일 듯합니다. 이수명의 시를 기다린 독자께, '세계의 ‘기분Stimmung’을 예민하게 느끼고 그에 영향을 받는'(해설) 시 읽는 이들에게 인사를 부탁드립니다. A : 안녕하세요. 4년 만에 ‘정오의 총알’이라는 제목으로 아홉 번째 시집을 내게 되었습니다. 같은 제목의 시가 시집에 수록되어 있어요. 이 시를 읽으시는 분들이 어떤 총알을 떠올리시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목표물을 관통하거나 어딘가에 박혀버리는 총알이 아니라 허공을 솟아오르는, 그리고 허공을 떠도는 총알을 생각했습니다. 정오는 그것을 자각할 수 있을 정도로 명료한 시간대로 여겨집니다. 황사가 짙은 봄날이어도 말이에요. 이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 표지도 황사의 색으로 구상해보았습니다. Q : 수록작 <최근에 읽은 책은 무엇인가요>의 제목부터 반가웠습니다. 이수명 시인이 최근에 읽은 책은 무엇인지 여쭙고 싶습니다. A :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혼란』입니다. 다만 ‘읽은 책’이라는 말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조금 읽다가 멈추곤 해서요. 며칠 뒤 다시 책을 집을 때는 어디까지 읽었는지 찾기보다 그냥 처음부터 다시 읽는 경우가 많아요. 그게 묘한 재미와 편안함을 줍니다. 어떤 책은 이렇게 오래 붙들고, 몇 문장이 제 안에 계속 살아서 변형되도록 두게 해줍니다. 『혼란』이 그런 경우에요. 언제나 읽는 중이고 언제든 처음부터 다시 읽을 수 있는 책이지요. 『혼란』은 좀 놀라운 책입니다. 생각의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무너지는 과정에 대한 묘사라는 느낌입니다. 실마리를 붙들지 못하고 놓치는 경험을 하게 하죠. 다른 책들을 읽을 때도 그렇지만, 그 실마리들을 애써서 수습하기보다는 그냥 들리는 작가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편이에요. ‘최근에 읽은 책’이라는 완료형이 아니라 아직도 저를 조금 어지럽히는 진행형의 책이라 하겠네요. Q : 수록작 <국립중앙도서관>의 화자가 마주친 '대뜸 말하는 노인'에게 도서관 이용자라면 동질감을 느끼리라 생각합니다. 도서관도 '정오의 총알' 같은 공간인데요. 이수명 시인이 독자에게 소개하고 싶은 도서관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A : 우리 주변에 도서관이 정말 많고, 사람들은 책을 보거나 쉬고 싶어 도서관을 찾지요. 하지만 그런 경우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갈 데가 없어서 온 사람, 비를 피하러 온 사람, 아니면 자기 안에서 약간 나사가 풀린 채로 온 사람. 오래전의 일인데요. 비 오는 날 도서관 앞에서 살짝 이상한 사람과 마주친 적이 있었습니다. 우산을 쓰고 있어서 그랬는지, 말을 걸며 코앞으로 근접하는 것도 몰랐어요. 제가 흠칫 놀라자 그 사람은 날카로운 웃음소리를 내고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고 지나갔어요. 이 경험 역시 시로 쓴 적이 있는데요. 어쩌면 그 사람이 완전히 틀린 장소에 있었던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오히려 맞는 장소에 있었을 수도 있지요. 도서관은 혼자인 사람들이 오는 곳이니까요. 뭔가를 너무 오래 생각하거나 현실에서 한 발짝 비켜선 것 같은 사람들 말이에요. 그분은 그냥 그걸 드러냈을 뿐이죠. 그는 도서관이 받아주는 인물 중 하나였음이 분명해요, 아무 조건 없이, 그게 도서관의 공평하고 신비스러운 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