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14살때 우리가족은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우린 단칸방을 시작으로 세탁소 옥탑방, 교회 목사님의 사택, 방두개짜리 박스아파트까지 자주 이사를 다녔고 부모님은 나와 형을 먹여살리기위해 세탁소일, 슈퍼마켓 캐시어, 식당보조일 등등 안해본 일이 없으셨다.
밤이면 자주 하셨던 말다툼과 이를 통해 험남한 이민생활을 해쳐나가셨던 부모님. 시골동네라 한인이라곤 몇없는 곳에서도 정치와 가십으로 시끄러웠던 한인교회들. 이민 생활 2년차때 한국에서 외할머니가 이민가방 가득히 한국음식재료을 채워 미국에 방문하셨을 때. 믿었던 지인으로부터 부모님이 사기를 당했을때.. 온전히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닌 이민자로 청소년기를 보내며 내가 겪었던 정체성에 대한 고민까지..디테일은 다르지만 어린나이에 한국인 이민자로 느꼈던 특유의 감정들과 경험들을 <미나리> 곳곳에서 찾아보고 느낄 수 있었다.
엄마를 모시고 극장에서 관람을 했고 영화가 끝난 후 엄마와 나 둘다 자리에서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엄마는 "우리 이야기네"라고 덤덤히 말하셨다. 고국을 떠나 머나먼 땅에서 뿌리를 내리고 정착해나가는것의 의미. 우리가족과 같은 이민가정의 이야기를 빅스크린에서 경험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부모님께 머나먼 미국으로 이민생활을 온 계기가 있냐고 물어보니 나와 형에게 더 훌륭한 교육과 미래를 주고 싶어서 순식간에 내린 결정이었다고 답하셨다. 그 결정은 운명이었을까 아니면 훗날 이민생활을 하며 겪을 고난을 예상하셨을까. 그때 부모님이 그 운명같은 결정을 내리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됬을까? 십여년이 지난 현재 부모님은 본인들의 아이디어로 비즈니스를 운영하고 계시고 작년엔 집을 사셨다. 나는 어엿한 성인이 되었고 한국계 아시안 아메리칸으로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운명이였던 아니였던 부모님이 뿌린 "아메리칸 드림"이란 이름의 씨앗은 십여년이 지난 지금 미국땅에 뿌리를 내린 미나리가 되었다. 씨앗이 심어졌던 그 시작의 의미가 영원히 변치 않기를. 이 뿌리또한 더 깊어져만 가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