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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명 쓴 사나이
평균 3.7
시작부터 등장하는 히치콕의 다소 뜬금 없는 선언은 어딘가 비장해 보인다. 히치콕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테마. 관음과 오인. <누명 쓴 사나이>는 오인으로 인해 누명을 쓴 남자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관객에게 즐거움을 주던 그의 영화들과는 확실히 다르다. 헨리 폰다는 적극적으로 사건을 해결하기위한 어떤 액션을 취하기보단, 그저 불쌍한 눈빛으로 무장한 채, 무기력하게 카메라를 응시한다. 관객이 히치콕 영화에 기대하는 바는 분명 매니와 그에게 벌어진 사건일테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보다는 오히려 매니와 로즈의 관계, 로즈의 불안이 더 중요해보이기도 한다. 이처럼 히치콕은 <누명 쓴 사나이>에서 의도적으로 쾌감과 오락을 제거한다. (나는 알리바이를 증명해줄 두 명의 증인이 모두 우연히 사망했다고 했을 때, 그날 매니와 함께 있던 누군가가 누명을 씌우기 위해 그 둘을 살해 했을 거라고 거의 마지막 순간까지 의심했다. 바보같이! 나는 히치콕의 선언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다.) 쾌감과 오락이 제거됐다고, 기대에 벗어났다고해서 실망스럽지는 않다. 매니의 심리를 표현한, 매니를 두고 정신없이 도는 카메라, 매니와 로즈의 관계를 보여주는 거울이 깨지는 장면, 매니와 진범의 얼굴을 디졸브하며 결국 정확하게 일치하는 순간등, 역시 히치콕이란 감탄이 절로 나온다. 영화의 갑작스런 해피엔딩은 의미심장하다. 돌이켜보면 언제는 매니와 로즈가 행복하지 않았던 적이 있었나? 매니에게 사건이 벌어지기 전까지 둘은 더할나위 없이 행복해 보였다는 점을 잊어선 안된다. 불안은 행복한 일상 속에 침전해 있다가, 서서히 영혼을 잠식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