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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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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years ago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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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것들

책 ・ 2024

평균 3.7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이후 15년 만에 출간된 앤드루 포터의 단편집. 수록된 15편의 단편이 모두 고요한 상실의 풍경을 그린다. 작품은 전부 40대 남성 화자가 주인공이며, 이들은 대체로 자기 자신 또는 주변인들이 예술 계통이다. 이들은 나이가 들며 으레 요구되는 책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어른으로 살고 있거나 혹은 그 반대로 자유로운 대신 불안하게 살고 있다. 어느 쪽이든 이들은 공평하게 무언가를 잃어버렸다. 그 상실의 대상은 우리 인생의 영원한 화두들로, 젊음·사랑·꿈 그리고 평화다. 책임질 아내와 아이가 있는 사람이 자식이 없는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빠져나온 뒤 겪는 이방인으로서의 감각(‘오스틴’), 화가 애인이 제 작품 중 가장 좋아한다는 작품을 선물해 줬지만 애인이 죽고 난 후 자기 스스로 그 애인을 진정으로 알았는지 확신하지 못할 때 드는 당혹감(‘넝쿨식물’), 첼리스트 아내가 병으로 몸의 주체성과 예술가로서의 자아까지 잃어 갈 때, 아내의 연주를 사랑했던 사람이 느낄 수밖에 없는 먹먹함(‘첼로’), 마흔셋이 돼 삶을 잘못 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허탈함(‘라인벡’), 친구가 실종된 후 친구의 집에서 불현듯 모든 게 있는데 친구만 없다는 것을 실감하게 될 때의 부당함(‘사라진 것들’). 앤드루 포터가 그려 내는 상실의 감정들은 이렇듯 한마디로는 설명할 수 없는 다양한 모양새다. 전작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에서도 그러했듯이 앤드루 포터는 상실과 부재를 겪는 인물들의 슬픔을 묵묵히 보여 줌으로써 과거에 발목 잡혀 있는 마음을 애써 모른 체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소설 속으로 호명해 위로한다. 인생에서 중요한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 같은데 무얼 잃어버렸는지 도통 알 수 없어 삶이 혼란하기만 하다면 이 소설을 펼쳐 보길. 당신에게서 ‘사라진 것들’을 대신 알아채 주는 이야기들이 거울에 비친 얼굴처럼 당신을 정확히 바라봐 주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