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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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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year ago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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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과 필연

책 ・ 2022

평균 3.9

“진리의 큰 바다 위에서 언젠가는 마주칠 수밖에 없는 거대한 담론을, 분자생물학의 칼로 담백하게 손질한 최고급 요리.” 이 책을 읽는 것은 나에게는 분명한 ‘지적 도전’이었다. 어쩌면 내가 과학 철학이 세계를 요리하는 방식에 익숙하지 않아서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책을 덮는 순간 나는 마치 영화 〈매트릭스〉에서 알약을 먹고 깨어난 ‘네오’가 된 기분이었다. 내가 네오와 다른 점이 있다면 나를 깨운 ‘모피어스’가 이제부터 내가 무엇을 하면 되는지 가르쳐주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자크 모노가 말한 대로다. ‘나는 마침내 내가 우주의 광대한 무관심 속에 홀로 내버려져 있음을, 내가 이 우주 속에서 순전히 우연에 의해서 생겨나게 되었음을’ 얼마간 공감하게 되어버렸다. 물론 이것은 그가 제시한 이 결론에 대해 내가 갖게 된 ‘심정적 공감’일 뿐일지도 모르겠다. 그가 성큼성큼 내디딘 논리의 발걸음은 나에게는 너무 빨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언젠가 다시 이 책을 찾게 되리라는 느낌이 든다. 삶의 어느 순간, 내가 논리의 걸음에 조금 더 능숙해지는 때가 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