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상민

노이즈가 말하기를
평균 3.7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방 한 구석에 카메라를 배치해두고 그 앞에서 가족이나 친구들과 진솔한 대화/고백을 나누는 다큐멘터리 연출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카메라를 그 자리에 놓는 순간부터 모든 대화는 사람들이 꾸밈없이 속내를 나누는 순간이 아니라 카메라에 의해 조성된 무대 위의 쇼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줄여 말하자면, 카메라의 존재가 감독과 영화 자체의 진솔한 태도를 훼손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노이즈가 말한다>에서 식탁에 앉아 어머니에게, 그리고 아버지에게 오다 카오리 감독이 커밍아웃하는 장면 역시도 앞서 말한 장면의 전형에 다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다 카오리 감독이 부모님에게 자신의 졸업영화에 출연해달라고 부탁하는 순간부터 이 생각은 사라진다. 오다 카오리 감독은 부모님에게 졸업 영화에 대해 각본이 있는 픽션으로, 딸이 부모에게 자신이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커밍 아웃하고, 그에 따라 벌어지는 가족들의 반응을 담고 싶다고 설명한다. 이 설명대로면, 오다 카오리 감독이 커밍 아웃을 하며 펼쳐졌던 앞선 장면들과 그녀가 찍고자 하는 졸업 영화는 분명 같은 내용이다. 졸업 영화를 핑계로 오다 카오리 감독의 커밍 아웃은 재연된다. 이 재연은 <그러므로 노이즈가 말한다> 속 장면들이 픽션인지 다큐인지 구분하기 어렵게 만든다. 정확하게는, 그 장면들이 다큐멘터리 제작 과정에서 촬영되었는지, 픽션 제작 과정에서 촬영되었는지 관객은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다. 사실 이 영화가, 특정 장면이 다큐인지 픽션인지 구분하는 건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다큐와 픽션의 경계를 흐리면서 얻어낸 효과다. 이 경계를 흐리면서 오다 카오리 감독의 카메라는(오다 카오리 감독의 사촌, 이모가 컷을 외치며 카메라를 끄는 모습도 등장하듯) 존재의 당위성을 획득한다. 커밍 아웃에 대한 가족의 부정적인 반응은 재연을 통해 재고될 기회를 얻는다. 감독이 나레이션에서 말한 것처럼 실제라면 전달하지 못했을 편지도 영화 촬영이라는 픽션의 과정 덕에 어머니에게 전달된다. <그러므로 노이즈가 말한다>는 픽션이 채우지 못하는 지점을 다큐멘터리로 보완하는 영화이며, 다큐멘터리라면 불가능했을 부분을 픽션을 통해 가능케 하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