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디

시녀 이야기
평균 4.0
2018년 05월 21일에 봄
상당히 불친절한 소설이다. 디스토피아를 기반으로 둔 소설은 리얼리티에 충실해야 한다. 이 사회가 어쩌다 디스토피아로 변모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해야 독자가 소설을 읽을 때 공감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정확히 몇 년도의 상황인지, 왜 디스토피아가 되었는지, 주인공은 왜 시녀가 되었는지 등등 소설을 읽을 때 생겨나는 궁금증에 대한 해답이 없다. 그나마 시대 상황을 '컴퓨터를 사용했다'라는 말을 통해 유추할 수 있는데, 이 마저도 소설 중반에 이르러서야 가능하다. 무엇보다도 답답했던 건 각각의 역할에 대한 설정과 설명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 소설이 '페미니즘'과 '디스토피아'로 회자되는 이유는 역할에 개인이 한정된 삶을 살아야하기 때문이다. '시녀' 역할을 배정 받은 주인공은 한 생을 수태하기 위해 살아야 한다. 여성 인권이 현실보다도 더 추락하고 암울한 상황을 그려냄으로써 독자들이 경계심을 품도록 한 목적은 이해한다. 그러나 시녀와 부인, 수호자, 사령관 등등 각각의 역할을 어떻게 배정 받으며 정확히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 저항하는 세력들은 도대체 무엇을 목표로 하며 이 디스토피아 사회가 어떻게 붕괴되었는지에 대한 말이 없다. 궁금증과 질문은 잔뜩 만들고 모든 것은 독자가 알아서, 스스로 해결해야만 한다. 감상평을 쓰는 지금도 이해하지 못한 것들에 대해 답답하다. 왜 이 소설이 유명한지도 여전히 모르겠다. 일주일이면 다 읽었을 이 책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두 달간 붙잡았던 게 경이로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