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an
3.0

Dialogue
책 ・ 2018
평균 3.9
2022년 03월 05일에 봄
더 고약한 건, 이런 직접적인 말하기가 서브텍스트를 지워버린다는 사실이다. 어떤 인물이 자신을 가로막는 힘에 대처하면서 자신의 욕망을 추구해가는 과정에서 내뱉는 언어적 반응과 언어적 전술은, 독자나 관객으로 하여금 그 인물이 입밖에 내서 말하지 않은 생각과 감정들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이끄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작가가 인물로 하여금 스스로 충분히 동기부여가 되지 않은 해설을 내뱉게 하면, 이 설익은 대사들은 감상자들이 화자의 내면으로 접근해 들어갈 통로를 미리 봉쇄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그리고 인물이 작가의 생각을 전달하기 위한 대변인으로 단순화되는 순간, 흥미는 사라진다. (51p) 코미디가 됐든 드라마가 됐든, 거의 모든 이야기에서 해설을 통해 드러나는 가장 중요한 사실들은 인물들이 외부 세계는 물론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조차 감추어온 비밀, 어두운 진실 등이다. 그렇다면 비밀은 언제 세상으로 나오는가? 그건 한 인간이 그나마 덜 나쁜 선택을 해야만 하는 딜레마에 직면할 때다. (58p) 서스펜스형 문장은 그것이 혼자 쓰였든 다른 문장에 병행해서 쓰였든 대사가 가장 강렬하고 극적으로 설계된 형태다. 그러니 긴장, 강조, 느낌의 확장, 그리고 웃음을 얻으려면 핵심 단어를 뒤로 밀어두라. (140p) 대화와 대사 사이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단어의 수나 선택, 혹은 배열에 있지 않다. 그 차이는 내용에 있다. 대사는 의미를 농축시키지만, 대화는 의미를 희석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현실적인 설정이나 장르에서도, 신뢰성 있는 대사는 실재를 모방하지 않는다. (152p) 앨리스가 잭에게 "이리로 좀 와줄래요?" 하고 소리를 질렀을 때는 우리가 미처 집 안에 발을 들여놓기도 전이었다. 앨리스는 앞 포치에 나와 있었고, 옥시와 포가티는 아직 소파에 앉아 있었다. 우리가 거기에 도착했을 때에는 그 둘은 움직이지 않고, 말도 안 하고, 앨리스나 잭, 나 중 어느 누구도 쳐다보지 않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길 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앨리스는 카나리아 새장을 열고는 잭에게 말했다. "당신 이 중에 어느 걸 마리온이라고 불러요?" 잭은 재빨리 포가티와 옥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 사람들 보지 마요. 그 사람들이 얘기해준 거 아녜요." 앨리스가 말했다. "두 사람이 말하는 걸 들었을 뿐이에요. 머리 위에 검은 점이 있는 이건가요?" 잭은 대답하지 않았고, 움직이지도 않았다. 앨리스는 검은 점이 있는 새를 잡아 손아귀에 쥐었다. "말해줄 필요 없어요. 이 검은 점이 그 여자 검은 머리를 가리키는 거겠죠. 안 그래요? 안 그래요?" 잭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앨리스는 그 새의 목을 비틀어서는 새장 안에 던져 넣었다. "나는 당신을 이만큼이나 사랑해요." 앨리스가 이렇게 말하고는 잭을 지나 거실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는데, 잭이 그녀를 붙잡아 뒤로 잡아당겼다. 그는 두 번째 새한테 손을 뻗더니 한 손으로 죽을 때까지 꽉 쥐었다. 그러더니 눈에서 피를 흘리면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 그 시체를 앨리스의 젖가슴 사이에 밀어 넣었다. "나도 당신을 사랑해." 그가 말했다. 이렇게 해서 카나리아를 둘러싼 문제는 모두 해결되었다. (196~197p) 창밖을 응시하며 몽상에 잠겨 있다고 창의성이 발현되지는 않는다. 미학적인 선택안들은 오로지 지면 위에 옮겨질 때만 살아난다. 아무리 시시한 대사라도 일단 써둬야 한다. 당신의 상상을 스쳐 지나가는 선택안을 남김없이 적어둬야 한다. 당신의 잠자는 천재성이 깨어나 재능을 하사해주는 순간을 마냥 기다리고 앉아 있어서는 안 된다. 완벽한 선택을 내릴 때까지 당신의 머릿속에서 생각을 끄집어내 지면 위의 실재하는 세계로 끊임없이 옮겨놓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글쓰기다. (205p) 좋은 작가는 이야기의 재능과 문학적 재능을 모두 발휘해 이른바 '빙산의 일각' 같은 기법을 펼친다. 작가는 인물들이 입 밖에 내지 않은 생각과 감정과 욕망과 행위의 방대한 내용을, 이야기를 추동하는 장치로서 눈에 보이지 않게 장면의 서브텍스트 안에 가라앉혀 둔다. (223p) 대사를 통해 인물을 묘사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인물의 지식은 주로 사물의 이름인 명사와 동사로 표현되고, 인물의 개성은 주로 이 명사와 동사를 채색하는 수식어로 표현된다. (232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