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JE

JE

5 years ago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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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

영화 ・ 2018

평균 3.4

활력과 무력감이 매혹적으로 공존한다. 이를테면 친구들과 술 마시며 한껏 떠들고 놀다 텅 빈 집으로 혼자 돌아가는 새벽 공기를 닮은 영화. 벌써 조금은 흐릿해진 기억과 마치 잔열처럼 남은 들뜬 기분, 약간의 피로함과 공허함까지.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는 하루의 끝인지 시작인지 모를, 즐거우면서도 혼곤한 새벽이 뜨고 저무는 풍경을 찍은, 마치 그런 영화 같다. 영화는 세 남녀의 삼각관계라는 다분히 뻔한 구도를 축으로 삼지만, 그들의 감정과 관계에 유난 떨 생각은 없어 보인다. 친구처럼, 연인처럼, 그저 떠들다가도 공허하게 순간을 흐트릴 뿐이다. 기분 탓인진 몰라도 <너의 새...>에서 원 숏은 웃고 있어도 외로워 보이고, 투 숏 내지 쓰리 숏은 자못 심각한 순간에조차 활기 차 보인다. 특히 <너의 새...>에서 가장 매혹적인 장면 중 하나인 클럽 씬은 이를 일부러 더 극대화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셋이서 함께 더없이 즐기며 웃다가도, 어느 한 인물의 얼굴/표정을 유심히 지켜보는 순간엔 지친 듯 찰나 경직되고 공허한 공기가 흐른다. 숫자를 세던 오프닝의 테이크와 편집, 180도를 넘던 이따금의 컷처럼 (영화 전반에 흐르는 듯한) 연결과 충돌 사이의 묘한 감각을 가장 절묘하게 가져다 주는 순간이었다. 한편 꽤나 무지한 말로 들릴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클럽 씬은 (분명 절묘하게 짜였을 테지만) 문득 떠오른 카사베츠의 <그림자들>보다 더 즉흥적이고 자유로운 활력으로 다가왔다. 이처럼 <너의 새...>는 드라마보다는 배우들이 흘리는 분위기랄지 표정에다 더 많은 몫을 맡긴다. 그래선지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진 세 배우의 마스크까지 괜히 조화롭다. 반항적인 듯 무표정하나 오히려 감정이 드러나 보이는 '나'와 늘 옅은 미소를 띄지만 되레 속내를 통 알 수 없는 '시즈오', 그들 사이에서 그야말로 한 마리의 새처럼 자유롭게 공명하는 '사치코'. 특히 <너의 새...>는 일종의 화자가 되는 '나'의 이야기긴 하지만, 분명 사치코의 영화이기도 하다. 120초를 세던 '나' 곁으로 뛰어오며 등장하던 사치코의 오프닝 속 환한 얼굴과 그제야 감정을 터놓는 '나'를 향한 복잡다단한 엔딩의 표정처럼, 시작과 끝을 수놓는 사치코는 <너의 새...>에서 가장 빛나는 활력이다. 묘한 활력과 정서로 가득하긴 하나, 따지고 보면 <너의 새...>는 무력하리만치 아무런 진전이 없는 영화다. 심지어 엔딩에 다다르면 이들의 이야기는 끝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새로 시작된다. 차라리 진짜 이야기라 할 만한 사건은 엔딩 이후부터가 아닐까. "나는 이 여름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고, "다음 계절은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던 '나'의 오프닝 대사를 빌리면, 결국 그에게도 이들에게도 다음 계절은 찾아오고 있는 셈이다. <너의 새...>는 분명 세 사람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세 사람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래서 더 매혹적일 뿐만 아니라 뭉클하게 다가온다. 끝인지 시작이지 모를, 즐겁지만 혼곤한 새벽의 어귀에 영화가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