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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의 마음

오리의 마음

17 days ago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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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집과 꿀

책 ・ 2025

아름다운 단편들이었다. 이렇게 한국계 디아스포라의 서사와 감정을 잘 표현한 작가가 있을까. 한국계 미국인인 폴 윤은 조부가 한국전쟁 때 탈북한 피난민이다. 그러나 조부에게 어떠한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 폴 윤의 이야기는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조부가 탈북한 피난민이라는 것. 조부에게 알게 된 건 그것뿐. 딱 그 한마디가 작가의 정체성을 만들었다. 모든 단편이 막막하다. 외롭다. 고립되었다. 경제적으로 어렵다. 미래가 없다. 희망이 없다. 이민자이다. 국가 폭력의 희생자이다. 전쟁으로 인해 삶이 고되다. 가족이 없거나 있어도 없다. 어딨는지 모른다. 뿌리 내릴 수가 없다. 어디든 날 거부한다. 누구도 날 환대하지 않는 곳에서 살거나 산 속에서 혼자 산다. 나의 이주는 내가 바라지 않은 이동이다. 외부의 힘이 날 움직이게 한다. 난 떠나야 한다. 떠나지 않아도 어차피 이곳에서 날 반기는 이 한 명 없다. 이곳에 있을 수조차 없다. 디아스포라의 감정을 모든 소설이 담고 있어서, 다 읽고 나면 삶이 위태롭게 서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1. 「보선」 트럭 운전수 보의 감옥 10개월 이후 캘리스에서의 삶. 가족 없고 고향 없고 경제력 없음. 기억나는 색깔은 빨강. 손에 묻은 피. 사람들은 날 험악하게 생겼다고 말함. 2. 「코마로프」 가난, 북한, 스페인, 독일, 청소 노동자 주연. 아이는 죽었고 남편은 어디 있는지 모름. 니콜라이 코마로프는 내 아이가 아니었어. 3. 「역참에서」 1609년 에도시대. (과감한 소설, 이 시대를 그리다니) 임진왜란 이후 고아가 된 유미, 일본에서 산 유미, 일본말밖에 못하는 유미를 조선인 사절단에 보내기. 또다시 강제되는 인생. 이주와 전쟁. 너는 조선인이니 이곳을 떠나야 한다. 유미는 이후에 어떻게 살게 될까? 4. 「크로머」 1970년대 탈북한 그들의 아버지, 그들의 아버지는 남한 여자와 결혼한다. 한국계 부부인 해리와 그레이스. 어느 날 모르는 아이가 해리네 가게에 들어와. 기억을 잃은 아이. 왜 이곳에 왔는지, 가출했는지, 이름은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른다. 딱 하나 아는 건 '크로머'. 그 동네는 무엇인가? 왜 지명이 생각난 걸까. 크로머만 생각난다. 살아 있다는 걸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딱 하나만 기억하고 산다. 그것은 크로머 또는 어떤 동네. 5. 「벌집과 꿀」 연해주 우수리스크 지역 남부 1881년. 치안관은 안드레이 불라빈, 그는 고려인을 관리한다. 고려인 마을에 사는 한 아내가 자신의 남편을 죽인다. 강간하고 폭행했기 때문에. 남편의 남동생이 여자를 목매달아 죽인다. 청각장애인 딸만 혼자 남는다. 고려인 동네 사람들은 아이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러다가 여자의 유령이 나타나 모든 마을 사람을 괴롭힌다. 꿀을 탄 찻잔에 벌이 앉고, 벌은 벌집으로 향한다. 그렇게 반복하며 치안관과 아이는 숲으로 들어간다. 부모가 모두 죽고 엄마의 유령이 사람들을 괴롭히는 나의 마을, 돌아갈 곳은 없다. 벌집을 찾으러 간다. 무엇을 위해 이곳을 관리하는가? 무엇을 위해 여기까지 왔는가? 유령이 나오면 뭐 어떠냐, 차라리 유령이 낫지. 고려인들은 차라리 유령이 낫다며 계속 이곳에 살 수밖에 없다. 6. 「고려인」 삼촌 죽음, 사할린섬으로 아버지 찾으러 간 16살 막심. 아버지는 다른 여자랑 살고 있다. 그 여자는 나를 싫어한다. 고향이 없다. 정착할 곳도 없다. 아버지는 어디로 갈 거냐고 묻는다. 다른 사람이 있냐고 아버지에게 묻는다. 다른 사람? 우리 가족이요. 내가 그걸 어찌 알겠니. 막심은 이제 고향도 가족도 없이 살아야 한다. 7. 「달의 골짜기」 전쟁 끝나고 혼자 산속으로 들어가 혼자 사는 동수. 어느 날 휴전선을 안내해달라고 그래야 가족을 만날 수 있다고 말하는 남자와 몸싸움을 벌이다가 사고로 그를 죽여. 동수는 그를 땅에 묻는다. 교회에서 온 아이들. 은혜와 운식이 가족이 되지만 삼촌을 찾는다며 찾아온 남자가 동수의 무언가를 건드려. 운식을 죽도록 패는 동수. 운식과 은혜는 떠난다. 운식은 어리저리 떠돌며 살다가 함부르크에서 사고로 죽는다. 은혜는 대구에서 일을 하다가 일흔 살쯤 된 동수를 오랜만에 만나러 갔는데 그는 죽어 있다. 혼자만의 비밀. 혼자 사는 삶. 고향도 뿌리도 가족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