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각설이

닥터 후: 스타 비스트
평균 3.3
닥터후는 내 10대를 책임진 드라마다. 여기가 왓챠긴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는 영화라는 장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시네필이 아니다. 본 편수만 치면 일반인들 사이에선 나름 매니아라고 할만한 수준이긴 하나, 나는 기본적으로 영화의 장르미학을 거부한다. 영화는 근본적으로 현대예술이다. 엄밀한 의미의 '고전' 영화는 따라서 존재하지 않는다. 19세기 말의 모더니즘으로 넘어가기 시작한 미술, 문학, 음악의 양식을 한 데 그러모아 섞은 게 영화라는 장르기 때문이다.(반대로 얘기하면 영화라는 장르를 깊이 이해하려면 영화사 이전의 예술사에 능통해야 한다. 영화라는 결과가 있고 그것이 어떻게 발전되어왔는지 알려면 고전예술을 깊이 파고들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시네필이 아니라서 고전영화를 본 게 거의 없지만, 고전영화를 보지 않는 이들을 비웃는 시네필들을 보면 조금 어이가 없다. 그네들도 고전예술 탐미하는 사람 별로 없던데.) 그러나 드라마는 조금 얘기가 다르다. 물론 그것을 영화에서 완전히 떼놓고 얘기할 순 없겠지만, 기본적으로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고 드라마는 글작가의 예술이다. 우리가 닥터후를 볼 때 이 시즌이 러셀이 썼고 모팻이 썼다는 건 알아도(정확히는 쇼러너 말이다) 감독이 누구인지는 거의 모르지 않는가. 심지어 매 에피소드마다 감독이 바뀐다. 그것은 드라마가 연극의 연장선에 있기 때문이다. 한국드라마가 유독 한국영화에 비해 형편없는 것은 한국이 희곡과 연극 전통이 매우 빈약하기 때문이다.(각각 20세기와 21세기를 대표하는 한국 영화감독 김기영과 봉준호는 연극에 관심이 아주 많았다.) 드라마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연극에 대한 감이 없으니 알지를 못하는 것이다. 나 또한 한국에서 나고 자라 성인이 되기 전까지 연극을 제대로 봐본 적이 없고, 관심도 흥미도 감도 없었다. 그러나 내가 빠졌던 닥터후를 통해 나는 그것을 간접적으로 체득하지 않았나 싶다. 나는 닥터후의 연극성에 끌렸던 것이다. 닥터후의 장면장면들을 생각해보자. 반고흐가 외상값을 그림으로 대신 치르려 했던 술집(식당이었나?)이라든지, 카닥이 두 박스를 앞에 두고 전쟁에 대해 일장연설을 늘어놓는 장면이라든지... 전자는 거의 대놓고 연극의 세트 같고, 후자도 아주 연극 같은 구도의 장면이다. 연극은 대사가 중심이 되고 대사로 극을 이끌어나간다. 거기서 연극 특유의 과장이 있는데 영화에만 익숙해지면 이것을 못 견디기도 한다. 다른 명장면들이나, 일반적인 장면들을 떠올려보아도 좋다. 아니면 CG보다 분장을 적극 활용하는 점이라든지...(이것은 물론 제작비 탓도 크기는 하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자. 미국드라마는 이런 느낌이 잘 나지 않는다. 연극성이 있기는 하나 훨씬 연하다. 왤까? 영국은 셰익스피어 이래 그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 연극 전통을 가진 나라기 때문이다.(미국은 나라가 아주 늦게 형성됐음에도 일찍이 19세기부터 뛰어난 시인과 소설가를 많이 배출했지만, 뛰어난 극작가는 20세기 와서야 나왔다. 한국소설도 그렇지만 20세기의 리얼리즘은 19세기의 그것과는 궤를 달리한다.) 영국의 유명 영화배우 중에는 연극배우 출신이 매우매우 많고, 베네딕트 컴버베치처럼 꾸준히 활발하게 연극 활동을 하는 배우도 역시 많다. 이런 비옥한 토지에서 나왔기에 그렇게 연극적인 것이다. 사실 닥터후가 영드 중에서도 유독 전통적이고 고전적인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올해로 60년이 된 드라마니까, 살아있는 화석 같은 존재인 것이다. 닥터후는 사실 장르적으로 따져봐도 아주 고전적인데, 닥터후는 19세기의 탐정소설, 모험소설, 과학소설을 아주 잘 섞어놓은 모범 같은 작품이다.(닥터는 셜록 홈즈와 같은 탐정 캐릭터다. 똑똑하고 오만하고 사차원이다. 자신의 신분을 위장하고(싸이킥 페이퍼, 존 스미스), 문을 따고 잠입하며(소닉 스크류 드라이버), 짱구를 굴려서 그날그날의 사건을 해결하고, 내심 어떤 사건이 벌어지기를 바란다. 테닥은 트렌치코트까지 차려 입었다.) 그 셋을 아주 좋아했던 고전주의자 보르헤스는 탐정소설에 대해 논하며, 탐정소설은 고전적이어서 자신이 더 좋아하는 장르이며, 현대의 미국 탐정소설과 달리 영국 탐정소설은 고전성을 유지하고 있어서 더 좋다고 했다. 영국은 참 전통이 굳건한 나라기에 그럴 것이다.(그게 좋게도 나쁘게도 작용하지만.) 한마디로 닥터후는 전위성이 무조건 좋은 건 줄 아는 바보들 사이에서 전통과 고전성을 보전하고 있는 훌륭한 드라마인 것이다.(전통을 훌륭하게 이어나가려면 패러디의 대가가 반드시 필요한데, 스티븐 모팻은 그중에서도 제일이며, 말하자면 팬픽의 대가라고 할 수 있겠다. 그의 또 다른 대표작 <셜록>을 생각해보라.) 사실 SF드라마라는 점에서 더욱 대단한 것인데, SF 작가들은 으레 과학지상주의자들이 그렇듯 회의주의와 허무주의와 현대성에 매몰되어 휴머니즘을 상실하게 마련이다.(우리 시대 가장 잘나가는 테드 창은 그래서 대단한 작가다. 그는 휴머니즘을 잃지 않았다.) 뭐 SF 말고도 장르작가들은 상당수 문학을 잘 모르고 그래서 고전성을 얻을 수 없었으니 한계에 직면할 밖에. 그러나 지난 오륙 년은 어땠는가? 솔직히 말하겠다. 나는 칩널후를 조금 보다가 때려쳤었다. 닥터후를 보지도 않고 닥터를 연기하겠다는 배우도 배우지만, 칩널은 그동안 좋은 에피소드를 쓴 적이 없던 작가다... 게다가 그들은 지금까지의 전통을 깨부수겠다는 신념에만 가득차 있었다. 그러니 뭐 제대로 될 수가 있었겠는가. 나는 뭐 다 보지도 않았지만 후비안이라면 칩널후를 달갑게 여기지 않으리라. 60주년 스페셜은 뉴시즌 최고의 인기 닥터 테닥과 뉴시즌의 시작을 알린 작가 러셀, 그리고 매력적인 컴페니언 도나 노블의 귀환으로, 닥터후라는 고전이자 전통을 복구하기 위한 시도이기에 대단히 중요하다. 그리고 스타 비스트는 그 3부작 중 첫째다. 우리 솔직해져보자. BBC는 닥터후의 전통을 되살리기 위해 그들을 데려왔다기보단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그러나 고깝게 여기는 스티븐 모팻과 피터 카팔디는 싫어서 여러모로 최선책이 되는 그들을 데려온 것이다.(물론 나도 모팻과 카팔디에게 돌아올 의사가 없다는 건 안다.) 나는 앞서 스티븐 모팻이 최고라고 얘기했다. 러셀은? 글쎄, 이렇게 얘기하면 다른 후비안들의 반론이 많이 있겠지만, 모팻이 천재라면 러셀은 수재다. 물론 러셀도 미드나잇 같은 훌륭한 단일 에피소드를 쓰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는 모팻에 한참 못 미친다. 과연 러셀후가 모팻 없이도 그 정도로 성공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솔직히 좀 불안한 감이 없잖아 있었다. 일반적인 에피소드라면 몰라도, 러셀이 과연 60주년 스페셜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에피소드를 쓸 수 있을지.(우린 아직도 10년 전을 기억하고 있잖은가. 닥터의 날을...) 물론 제대로 판단하려면 3부까지 봐봐야겠지만, 1부만 봤을 땐 글쎄... 앞선 전개는 뭐 나름 지루하지 않고 재밌게 봤지만, 어떤 긴장감이나 강한 몰입감을 주지도 않았고 전개를 위한 전개 느낌이 강했다. 전혀 모험 같지도 탐정 같지도 SF 같지도 않았다는 말이다. 닥터와 도나가 택배를 두고 마주치고, 도나 딸이 괴물을 쓰레기장에서 발견해 데려오고, 유닛이 우주선 문을 따다가 세뇌당하고, 외계인들이 총질을 하고, 닥터가 집으로 들어오려다 작은 소동을 벌이고, 만능 소닉으로 벽을 만들어 막고 벽을 부수고 다른 집으로 넘어가 조금 떨어져 있던 차를 타고 탈출하고, 괴물이 우주선을 가동하느라 런던이 무너지려 하고... 이게 진짜 최선이었나? 그리고 그렇게 닥터도나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서 억지로 억지로 그 과정을 밟아오다가... 우주선이 출발하니까 갑자기 벽이 내려와서 둘을 나누니, 런던을 구하려면 닥터가 둘이어야 한다. 거기서 러셀은 회심의 아이디어를 꺼낸다. 딸이 만든 인형들을 복선으로 깔고 15년 전 '바이너리' 대사를 가져와서 '논바이너리'로 해결한다... 뭐 나름 신박하긴 한데 조금 김이 샌다. 솔직히 말해서 이런 식으로 충격을 안겨주는 데 능한 건 모팻 아닌가. 뭔가 어설프다. 그래도 여기서 마무리 지었으면 나는 6점까지도 줄 생각은 있었다. 근데 이게 뭥미? 아직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이 안 됐단다. 하긴 그것도 그렇다. 둘로 나눴다고 인간이 어떻게 타임로드의 정신을 감당하는가. 근데 갑자기 분위기 렛잇고. 이게 뭔지... 시청자는 전혀 이해할 수 없지만 스스로 타임로드의 정신을 내려놓을 수 있나보다. 그럼 15년 전에 그 똥폼은 왜 잡고 눈물은 왜 흘렸나? 러셀이 도나를 다시 데려오기 위해 준비한 게 고작 이거였나? 장난하는 건가? 나참... 나는 예고편만 봤을 땐 토이메이커의 농간으로 도나도 일시적으로 멀쩡한 거인 줄 알았다. 러셀은 진지해야 할 상황에 극을 어떻게 진지한 쪽으로 끌고 가는지 그 방법을 다 잊어먹었나보다. 그래도 남은 두 편에서 확 좋아질 수 있으므로, 일단은 워밍업이라고 생각하고 믿어보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겠다. 하지만 이래서야 시즌14도 전혀 기대가 되지 않는다... 시간을 많이 들일 수 없어서 글이 두서가 없고 정돈이 안 되었고 문장도 엉망이고 이상한 구시대 말투(갑분렛, 뭥미 등)가 다수 섞이긴 했는데, 그거는 양해를 구한다. 솔직히 읽는 사람도 별로 없을 거 같긴 한데... 뭐 아무튼 그렇다. 서두가 오히려 더 본론 같은 느낌이다. 아 맞다, 이거 일요일날 나오고 1시간 정도돼서 바로 봤는데 리뷰 남기는 걸 까먹어서 리뷰를 이제사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