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상훈 남

탈주
평균 3.1
2024년 07월 03일에 봄
해가 뜰 때까지 죽을 힘을 다해 달릴 수 있는 원동력과 그걸을 쫓기까지의 집념,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 결국은 현상보다 규남의 ‘하고 싶은 욕구’가 아주 조금은 더 컸던 게 아닐까. 현상은 규남을 보고, ‘어쩌면 자신이 해내지 못 한 일’을 대신 해내줄 수 있진 않을까‘ 하고 희망하진 않았을까. “왜 내 앞길을 맘대로 정하십니까?” “그럼 네 앞길을 네가 정하니?” 오늘을 주시하며 살아가는 현상(구교환)에겐 ‘뭐가 보이는지’가 중요하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미래(내일)를 꿈꾸기보다는 그저 자신에게 처해진 현실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인물. 실제로 현상은 충분히 총을 쏠 수 있는 상황에서 조명이 깨지자 쉽게 쏘지 못 한다. 반면에 시야가 확 트인 상황에서는 발군의 사격실력을 자랑하기도 한다. ‘엥 왜 저걸 못 맞춰’에 대한 질문에 명료한 답.이유는 간단했다. 진작에 ‘하고 싶은 일’을 그만두었던 과오가 있었기 때문에, 그는 ‘보이는 것‘에만 초점을 맞춰 쏠 수 있었다. (사실은 부르트는 것을 방지한 립밤, 핸드크림을 사용하고 있으면서 말이다. 마치 자신도 꿈을 꾸고 싶어하는 버릇이 온몸에 남아있지만 그것에 초연하고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만 같은 점이 아주 입체적인 캐릭터였다) “잘못했습니다.” “어머니가 보고 싶은 게 무슨 잘못이래?” 한편 규남(이제훈)은 어떤 역경에도 ‘그게 뭐 어쨌다고?’ 질주를 멈추지 않는 인물이다. 관객들은 ‘저기서 그냥 도망쳤으면 살았을 텐데’하는 부분에서 과할 정도로 타인을 도와주고 오히려 그것에 더 집착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규남의 캐릭터가 ‘내일을 바라본다는 희망적인 인물’이라는 점은 좋았으나 처음부터 끝까지 ‘확신에 찬 질주’에 치우쳐져 내면 안에서의 ‘음과 양’ 조화가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탈주’라는 소재를 ‘현실’에 대입시키려면 확신을 가지지 못 하고 방황하는 듯한 모습을 넣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판단을 네가 하니? 앞으로 전진.” 감독의 전작인 <전국노래자랑>, <도리화가>,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 이어, ‘하고 싶은 것을 하라’는 강력한 메시지의 완성형인 작품이 바로 이 영화라고 말할 수 있다. 영화 속 인물들이 하나같이 우여곡절 끝에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깨닫는 서사는 스크린 너머 관객들을 위로하고 끊임없이 응원해준다. 이런 메시지를 좋아하는 감독을 미워할 수는 없다. 자신의 결함이 뭔지 인지하고, 보완하고, 깔끔하게 다듬은 이번 작품을 보니 더욱 박수를 보내고 싶다. “남쪽이라고 다를 거 같아? 세상에 그런 낙원은 없어.” “그래도 집은 갈 수 있지 않습니까.” 해가 뜨는 순간까지 질주를 멈추지 않고 이악물던 규남을 현상이 아무렇지 않게 따라잡는다. 이것은 누구보다 찬란하게 질주해봤던 현상을 가리키는 대목이었다. 자신이 피아노를 쳤을 때의 강렬한 열망, 그것에 얽매였던 먹먹한 기억. 마치 그 소중함을 다시 일깨워주기라도 하는 듯 규남의 확고한 질주를 보며 그는 헷갈렸을지도 모르겠다. “나라고 하고 싶은 거 없었겠어?” “도전해보면 알겠죠. 해보길 잘 했지 않습니까? 피아노요.” [이 영화의 명장면] 1. 질주 지뢰밭을 뚫고 눈물을 머금으며 규남이 질주하는 장면. 새벽빛을 받아 어둡다가도, 이내 밝게 트는 태양을 배경으로 규남이 달리는 장면은,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운 질주였다. 바쁘고 외로운 현대사회에서 그럼에도 질주하려는 모든 사람들을 비추고 있는 것만 같았던 장면. 그리고 그 중심에는 ‘내’가 있다. 죽어도 내가 살고, 살아도 내가 산다는 대사처럼, 그 모든 결정과 책임은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죽어도 내가 죽고, 살아도 내가 산다.” 2. 희망 그 동안 보이지 않는 희망을 위해 질주했다면, 이제는 보이는 곳에 닿기만 하면 되는 차례. ‘드디어 다 왔다’는 마음에 방심을 하게 되기도, ‘여기까지 왔기에’ 더욱 더 포기할 수 없는 간절함이 생기는 지점. 현상은 분명 방아쇠를 당길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내 규남이 그토록 믿어왔던 미래를 더 이상 의심하지 않아 보기로 한다. 자신이 인정하고 순순히 따랐던 운명이, 알고 보니 바꿀 수 있는 것이었다면 좋겠다는 마음이 그에게도 있었으니까. 그는 총구에 미련을 갖지 않고 재빠르게 돌아선다. ‘급하게 할일이 생겨 돌아서는 사람’마냥 말이다. 현을 생각하는 마음. 그래서 현상이 아닐까 싶다. “가라, 가서 마음껏 실패해라.” 제목은 탈주지만, 수도 없이 포기하며 사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포기를 게속 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것에 진절머리가 나서 발버둥치게 되는 순간이 있다 이 영화가 그랬다 멈추지 않고 끝까지 질주하는 영화 “저는 한동안 많은 것을 포기하고 살아왔는데 아주 사소한 거 하나, 뭐라도 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제 모습을 보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제가 이루고 싶은 꿈입니다.” 나에게도 저렇게 이악물고 질주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그래서 오늘, 이 순간만큼은 행복합니다.”